도올 김용옥님의 글을 읽고..

 

(대강 글을 읽고 쓴 것이며, 더 자세히 수정할 생각은 없습니다. 지금 해야할 일이 쌓인 관계로 김용옥 님에 대한 글은 대강 마무리 지을 생각입니다.)

도올 김용옥 님의 글을 읽으면서 문장 하나 하나에서 보이는 비논리성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원고료를 지불할 것을 생각하면 의아하지 않을 수 없다.

그의 글은 현학적이기는 하지만 철학적이라고 해서 다 옳다고 볼 수는 없으며, 차분히 않아서 글을 읽어보면 독단적이지 결코 합리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고 보인다.

우선 헌재에 판결에 대해서 본인처럼 아주 단순한 사람은 그것이 과연 관습헌법인가 아닌가, 혹은 수도 서울에 대해서 우리가 과연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생각할 것 같다. 하지만 김용옥님은 그것에 대해서 상당히 쉽게 결론을 내리고 헌재의 비도덕성에 대해서 지나치게 많은 양을 할당했고, 그것은 일반 독자들에게 호응을 얻었다.

먼저 글을 진행하기 전에 그가 말한 철학이 정확하게는 무엇인지 모르지만 동양철학의 사람중심의 사상이라고 생각되며, 본인도 역시 Humanist 특히 secular humanist 가 되고자 노력하는 사람이다. 우리의 출발은 거의 같은 선이 아닌가 싶다.

관습헌법과 성매매 및 호주제

우선 그가 관습헌법에 대해서 생각하는 바를 인용해 보자.

그는 호주제와 성매매를 관습헌법의 예로 들었다. 본인이 헌재가 아니므로 정확하게 이것이 관습헌법이라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 이 두가지는 헌재가 제시한 5가지 기준을 통과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헌법으로 생각되기엔 몇가지 문제가 있다.

매매춘이 인류의 역사 만큼이나 오래되었다고 하지만, 그것은 일반적으로 사원창녀를 두고 하는 말이다. 하지만 사원창녀는 보편적이라기 보다는 독특한 특수 문화에 한정된 것이다. 사원창녀는 지금도 존재한다. 인도에는 데바다시라는 풍습이 있는데, 딸을 수도사나 절에 결혼시킨다. 이 결혼은 일반적으로 초경에 이르기 전에 행해지며, 그 소녀가 카스트 제도의 상위층 사회 구성원을 위한 창녀가 되는 것을 요구한다. 이렇게 결혼한 여자를 죠기니라고 부르며, 이 풍습은 공식적으로는 1988년 금지되었으나, 아직도 인도의 남부에서는 이것이 행해지고 있다. 이 풍습은 현재 인도의 수치의 하나이다.

하지만 이러한 사원 창녀가 현대적인 창녀들의 시초로 보는 것 보다는 전쟁의 포로, 혹은 노예제와 관련이 있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여성을 노예로 가지고 있는 주인은 여성노예를 창녀로 만들어서 돈을 벌었다. 또한 이것과 다른 학설로는 kin gift로 여성을 부조간의 선물로 주고 받은 풍습에서 기원한다는 말도 있다. 이 두가지 중 어떠한 것이 매매춘의 역사일지는 몰라도 한가지는 분명하다. 이 매매춘에 있어서 여성이 자발적으로 참여한 경우는 극히 드믈다는 것이다. 이것은 헌법의 정신과 정반대이다. 매매춘에 참여하는 여성의 경우, 대부분은 극빈자의 어린이를 데리고 돈대신 받아오거나 혹은 인신매매로 충당했다. 이러한 풍습이 과연 지속되었다고 해서 정당한 것이라고 볼 수 있는지는 의심스럽다.

매춘이 나쁜 이유중 가장 심각한 것은 다른 노동력과는 달리 여성스러움을 판매하는 것으로 매춘에 빠진 여성은 심각한 자아손상을 경험한다는 점이다.

물론 페미니스트들의 일부는 매매춘이 성인의 문제이지, 법률의 문제가 아니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것에 대한 합의가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이것이 관습헌법이 되겠는가? 아마 많은 남성들이 사창가 주변으로 이사를 가고 싶어하고 출퇴근 하고 싶어하지 않는 이상 이것은 불건전한 관습에 불과하다.  

도올은 이러한 문제를 감안하고 매매춘이 관습헌법이라고 주장하는 지 모르겠다. 오랜 역사를 통해서 살인이나 도둑질이 존재했다고 해서, 그것이 관습헌법이 될 수는 없는 것이며, 오랜기간 원한에 대한 보복이 정당화되었다고 해서, 그것이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지 않고 그것이 관습헌법이라고 말해져서는 안되는 것이다.

또한, 호주제는 이제 많은 사람들이 호주제 자체를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고 있으며 호주제는 남녀를 차별하고 있다. 단지 오래되었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기본권을 침해하고 있다고 보는 사람들이 많으므로 이것은 곧 폐지될 가능성이 높은 법률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관습헌법이라고 보기 어렵다.

도올이 왜 헌재를 비난하는가에 대해서 정확하게 그 이유를 설명한 부분은 놀랍게도 거의 없다. 도올이 7적이라고 주장하면서 인신공격을 하면서도 막상 왜 그들이 7적이라고 하는가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은 사실상 없다고 보인다. 다만 그는 유창한 말로 그들이 인간위에 법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무시했다고 주장한다.

헌재가 비록 이러한 것 모두를 자세히 설명하지 않았지만, 헌재가 예로든 불문헌법은 사실 이러한 호주제와 매매춘과는 아주 관계가 먼 것들이다.

도올이 말하는 인치

도올은 인치를 말하고 있다.

사실 중국사상사와 헌법과 무슨 관련이 있다는 말인가? 공자와 법가가 도대체 헌법과 무슨 관련이 있다는 말인가? 나는 중국사람도 아니고, 중국의 철학에 관심도 없다. 더군다나  샤오 꽁취앤(蕭公權)온 도대체 왜 그렇게 절대적인 권위를 인정받는가? 그냥 우리나라의 인내천 사상과 다른 바 하나도 없는 그 내용을 왜 인용하는지 모르겠다. 정치가 인치라는 말은 사실 그리 낯선 말도 아닌데 말이다.

사실 김용옥씨는 공자의 사상이 인치라고 하지만, 공자시대 이후로 중국은 최근에 이르기까지 천자가 다스린 나라이고 중국 역사상 민주주의를 허용한 왕조는 하나도 없다. 우리는 단지 공자의 사상을 오늘날에 이어 받으려면 인치로 해석하는 것 좋겠다는 정도만 동의할 수 있는 것이다.

 

수도이전의 가능성

도올은 헌재가 수도이전의 가능성을 완전히 없앴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분명히 잘못된 해석이다. 헌재는 이것이 관습헌법이냐 아니냐라는 것을 가장 중점적으로 설명했고, 관습헌법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관습헌법이라는 것에는 몇가지 의미가 있다. 우선 대부분이 사람들이 수도가 관습헌법에 속할 만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는 것과 대다수의 사람들이 현재 이것을 바꾸려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다시 말해서 국민투표를 해봤자 패배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점에 대해서는 그 전후로 발표된 조사에서도 쉽게 알 수 있다. 너무나 당연하기 때문에 굳이 이러한 것을 확인하기 위한 국민투표 등의 절차에 대해서 관심을 가질 필요성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도가 옮겨질 가능성이 있는 다른 많은 방식들이 있다. 우선 헌법에 수도의 위치를 명기하고, 다른 많은 내용과 더불어 헌법 개정을 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경우에는 당연히 수도이전 문제는 헌법개정 절차에 포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단순한 법률로만 이것을 정할 수 없다는 말이다.

헌재는 불문헌법의 폐지를 확인하기 위해서 국민투표를 하는 것에 반대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헌재가 논의를 막은 것도 없을뿐더러 국민투표로 결정할 권리를 박탈하지도 않았다.

 

헌법과 수도에 관한 언급

헌법에 대해서 언급하면서 도올은 수도는 사소한 문제라고 주장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헌법이 수도의 위치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고 하지만, 그것은 도올의 판단이다. 우리는 그의 판단을 존중한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동일한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닌 듯 싶다. 중앙일보는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우리가 여기서 한가지는 분명하다. 우선 수도를 옮기려는 나라는 사실상 많지 않다는 것이다. 수도를 쉽게 옮길 수 없기 때문에 많은 나라 중에서 수도를 옮긴 나라 자체가 많을 수 없으므로 수도를 옮길 때 헌법을 개정해야 하는가의 문제는  답하기 어렵다. 즉 위의 사실만으로는 너무 적은 사실로부터 너무 많은 것을 추론하는 것이다. 너무 적은 사례로는 일반화시킬 수 없다.  

하지만 헌법에 명기된 많은 나라는 당연히 수도 이전을 위해서 헌법을 개정해야 한다. 그러므로 앞으로 헌법에 수도 위치가 명기된 나라가 수도를 이전하는 경우 반드시 헌법 개정을 할 것이다.

수도와 천도

행정수도 이전을 헌재에서 단순히 행정수도 즉, 행정타운 정도로 생각했다면 헌재 역시 위헌 판결을 내리지 않았을 것이다. 위의 주장은 사실 현실의 왜곡이다. 왜냐하면 청와대 이전하고 행정부가 이전하고 국회가 이전할 계획을 세웠었다. 그럼 대법원은 남아서 무엇하겠는가? 사실상 주요 국가기관이 전부 이전할 계획을 세운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것을 무시하고 행정수도의 이전이라는 말을 앞세우는 것은 심각한 왜곡이다.

그리고 우리는 미국의 수도는 워싱턴이라고 말하며, 뉴욕이 미국을 상징한다는 것 역시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수도는 워싱턴이며, 어떠한 사람도 뉴욕이 미국의 수도라고 말하지 않는다.

더 이상한 것은 고려는 3경제를 두었고, 고구려도 3경제를 두었고, 발해가 5경제를 두었고, 통일신라가 5소경을 두었다고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고려의 수도는 개성으로 알고 있으며 통일신라의 수도는 서라벌로 알고 있다. 어느 누구도 이것에 대해서 부정하지 않는다. 5경제라는 것에 경이 서울을 의미한다고 하지만, 그 당시 언어가 지금의 언어와 동일하지 않기 때문에 각각의 나라에서 3개 내지 5개의 수도를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넌센스이다.

만약에 그러한 식으로 생각한다면, 우리는 아주 오래전부터 서울 특별시와 부산직할시의 2경제를 두었고, 그 뒤로 서울, 인천, 대전, 대구, 광주, 부산의 6경제를 실시하고 있는 것이다.

다경제로서의 수도

고려이전까지 다경제를 두었다고 하지만, 그것이 수도와는 관련없는 일종의 광역시나 직할시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우리는 왕궁의 위치가 3군데라던가 혹은 이에 필적한만한 어떠한 것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행정수도가 공주·연기로 이전된다 하더라도 서울은 여전히 경제·문화·예술·금융·교육의 수도"라고 하지만, 실제로 수도는 행정이나 사법의 수도이지, 경제, 문화, 예술, 금융, 교육의 수도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만약에 존재한다면 각각의 사례를 각 나라별로 들어주기 바란다.

서울과 경국대전

도올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도올은 왕도와 수도가 동일한 차원에서 연속적으로 이해될 수 없다고 말한다. 수도라는 개념의 현대적 의미와 왕조적 의미에는 항상 깊은 단절이 있다는 것도 지적되어야 할 문제 중의 하나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것이 중요하고 타당한 질문인가?

왜 해방 전후 서울은 자연스럽게 수도가 되었는가? 왕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왕도가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여들었고 자연스럽게 행정부가 위치했을 것이다. 왜 사람들이 거기에 몰려들었을까? 왜 수도이전에 대해서 커다란 논의가 없었을까? 이러한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 조선시대의 사람들의 생각을 참조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왕도와 수도의 개념이 다른 것은 사실이지만, 왕도에서 수도의 개념으로 진화혹은 발전한 것이다.

헌재가 경국대전을 찾은 것은 이러한 변천과정에서 사람들의 과연 수도를 어떻게 인식했는지를 파악하기 위한 것이지 우리가 경국대전의 법률을 따르고자 했기 때문은 아니다.

 

서울은 서울이어야만 하는가?

전효숙 재판관의 말도 일리는 있지만, 관점의 차이이고, 이것은 현재 소수의견에 불과하다. 사실 전효숙 재판관의 주장은 논점을 잘못이해한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서울이 계속 수도이어야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서울이 수도이며, 수도는 많은 사람의 생활에 매우 큰 영향을 주기 때문에 합의가 없이 움직여서는 안된다는 것이 수도이전 반대론자의 주장이다.

 

불문헌법과 관습헌법의 차이점

관습은 습관처럼 이어졌다는 말이고, 불문은 문자로 적혀있지 않다는 뜻이므로 서로 일정부분은 공통된 부분이 있을 것이다. 아마 도올 김용옥은 불문헌법을 절대 변하지 않는 법칙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헌재는 그런 의미로 관습헌법을 사용하지 않았다. 인간이라는 생성체를 도외하지도 않았고, 관습헌법이 충분히 변화할 수 있다는 것 역시 헌재의 판결문에 아주 자세히 언급되어있다.

다시 말해서 헌재의 결정문을 도올을 잘못 이해하는 것이다.

 

위헌결정을 받아들여서는 안되는 이유?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시키지는 못한다. 국민의 대다수가 원하지 않는 수도이전을 추구하는 것이 과연 민주주의로 인치라고 할 수 있는가? 최소한 도올의 말대로 헌재의 판단은 실수가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설사 헌재가 그 판결을 위헌이 아니라고 해서, 국민의 뜻에 반대하는 그 법을 실행하는 것이 정의롭고 올바르다고 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것은 공자가 살던 시기, 혹은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에서는 당연할 수는 있지만, 현재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범죄이다.

 

한비의 지혜

동양철학에서 말하는 무의가 도대체 무엇인지 모르겠으나, 최근에 유행하는 단어인, natural이라는 단어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사실 많은 사람들은 자연적이라는 말에 포근함을 느끼고 있으며 이 단어를 매우 사랑하고 있으나, 가만히 속을 들여보면 자연은 결코 자비하지 않다.

회의주의자의 사전의 Natural 항목의 첫구절은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사실 노장 사상에서 말하는 자연이라는 것은 개개인이 자연에서 추출한 가장 좋은 것만을 가지고 만들어낸 개념으로 현실에 존재하지도 않는 것이다. 그러한 가공의 것을 추구하는 것은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다.

더군다나 도올은 그 도구로 상과벌을 이용할 것을 지적하고 있다. 사실 결론과 관련없이 한가지 지적하고 싶은 것은 왠만하면 심리학 교과서는 좀 읽어보라고 하고 싶다. 사람을 벌로 다스리지 말고 인으로 다스리라고 하는 사람이 결국 대통령에게는 상과 벌 특히 내용상으로는 갑신7적에게 벌을 주라는 암시가 강한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국민은 종이 아니고 노예가 아니다. 함부로 벌을 가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군인조차도 함부로 그렇게 하지는 않는다.

벌이라는 단어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는지 모르지만 벌로서는 행동이 잘 고쳐지지 않는다. 오히려 반대의 결과가 많다. 행동을 고치는 두가지 방법은 크게, 상에 해당하는 positive feedback과 벌과는 차원이 다른 negative feedback 이 있다. 아마 도올은 negative feedback과 벌을 동일한 것으로 착각하는 것 같다.

 

Belief machine

이제 마지막으로 belief machine에 대해서 언급할 필요가 있다. 이 글은 도올의 저주에 가까운 헌재에 대한 비난을 가하고 있으나, 사실 그것은 근거가 거의 없거나, 헌재의 판결을 잘못이해한 것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왜 이러한 일이 벌어졌는가에 대해서 좀더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Belief machine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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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인간의 어떠한 것을 믿게 되는 과정은 이상적인 과정을 거치지는 않는다. 정상적이고 이상적이라고 한다면, 어떠한 것을 연구하고 그것으로부터 이해하고 나서 여기서 판단을 하는 것이 아니라, 판단을 멈추고, 다시 그것에 대한 증거를 수집한 후에 믿어야 하는데, 일반적으로는 이해를 하고 나면 믿음이 생기게 된다.

이것은 인간이 수렵채취를 하던 시기 이후로 뇌가 더 이상 크게 진화하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으며, 대체로 약 30-40명 정도로 떼를 지어 다니던 시기에는 지나치게 복잡한 믿음체계 보다는 더 효율적이었을 것이다.

도올의 주장은 한마디로 이러한 전형적인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자신의 주장에 맞는 것들만 선택적으로 증거를 수집했다. 이러한 것은 모든 사람들이 범할 수 있는 잘못이므로 그것을 탓할 수는 없지만, 그것을 다시 한 번 검증하려는 시도는 하지 않았기 때문에 문장문장마다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이 포함된 것이다.

도올은 지나치게 적은 자료로부터 너무나 많은 결론을 이끌어내려고 하고 있다. 노무현에 대한 찬사는 아마 정권이 바뀐 후에 읽으면 얼굴이 뜨거울 것이다.

 

인본주의와 도올

도올의 인본주의는 다스림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의외로 노무현에 대한 위로부터의 개혁의 당위성에는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으나, 아래로부터 오는 국민의 저항에는 관심이 없는 것 같다.

단순한 인치라는 말을 위해서 그렇게 복잡한 언어를 사용해서 설명했지만, 그것이 어려워야할 이론은 전혀 아니다.

위의 말은 헌재가 노무현이라는 사람을 증오한다고 생각하고 있으나, 증거는 없다. 더 심하게 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글은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할 수 없는 글이다. 한 인간을 7적이라고 말한다면, 그에게 우리는 어떠한 권리를 줄 수 있을까 생각해 보라, 그는 바보짓을 일삼는 그리고 국가에 해가 되는 인물들이다. 그들에게 정당한 임기를 보장하는 것은 무의미할 것이며, 그들의 주장에는 귀를 기울일 필요가 없다. 그들은 마땅히 죽여도 좋으나, 법이 보호해서 간신히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들을 비난하는 것은 당연하며, 그들에게 주어진 권리는 자유민주주의 필요악 정도에 불과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한 위대한 사상가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도대체 왜 이런 말을 할 수 있는가?

그것은 도올이 오래전부터 독단론자였기 때문이라는 답, 이외에는 어떠한 다른 답변을 찾기 어렵다.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은 절대적인 선이요, 진리요, 자신을 비난하는 다른 많은 사람들은 모두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보들이며 그들의 행위는 바보짓에 지나지 않는다.

동양철학 자체가 우주의 원리나 인간세상의 기본 원칙을 찾는데 주력해왔다는 것을 생각하면 동양철학을 깊이한 김용옥이 이러한 독단주의에 빠진 것은 당연한 지도 모른다.

이에 비해서 헌재의 7명은 나름대로 건전한 회의주의의 전통을 지키고 있다. 이들은 수도이전에 대한 여러 가지 논의를 검토하면서 많은 것을 확인했고, 결론은 수도 이전이 과연 국민의 기본권인 국민투표권을 침해했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들은 수도라서 못 옮긴다고 말한 것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우리가 얼마나 뿌리깊게 서울에 대해서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으며, 그것이 국민의 생활에 얼마나 큰 영향이 줄 것인가를 분석했다. 그리고 그들은 국민적 합의가 없음을 확인했고 이것을 바탕으로 판결을 했다.

도올이 했어야 할 일은, 정말로 서울이라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생활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 그리고 현재 국민들이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가를 살폈어야 한다. 하지만 그는 역사를 살피면서 선별적으로 증거를 수집하여 역사를 왜곡했다고 보이며, 국민의 대다수의 뜻과는 반대되는 주장을 했다. 그는 새로운 고속철로는 45분밖에 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찾아냈으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결국 자가용을 사용할 것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역과 역사이의 운행시간이 실제 이동 시간이 아니라는 점은 간과하고 있다. 누가 그런 분석을 믿을 것인가? 나는 내가 서울로 가는 경우 대개 30분 정도면 충분하지만 실질적으로 목적지를 가는 경우 일반적으로 2시간이 넘는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다. 왕복이면 4시간이나 된다. 만약에 서울에서 실질적으로 45분만에 신행정수도의 일자리를 찾아 갈 수 있다면 자연히 그 지역은 주변 신도시지역보다 훨씬 더 발전할 것이다.

역사적으로, 일세를 풍미했던 헤겔과 같은 독단주의 철학이 서양에서 다시 번성할 가능성은 별로 없어보인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아직도 독단주의가 국민의 넓은지지를 받는 것은 어쩌면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제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민주주의라는 것은 절대적인 선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합의를 위한 절차라는 것이다. 다수결이라고 해서 항상 다수가 옳다는 것은 아니다. 민주주의의 원칙은 서로 다른 의견에서 어떠한 결정을 하기 위한 수단으로 다수결을 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헌재의 결정 역시 절대적으로 헌재의 결정이 옳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헌재의 결정을 비난하는 것까지는 용납이 되도 인격적인 모독까지 하는 것은 그다지 성숙된 태도는 아니다. 진정으로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고 싶다면 국민만 설득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