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은 66권이 맞나?


이 말은 외경이 성경에 포함되는가 안되는가에 따른 중요한 논쟁을 말합니다. 개신교는 특히 KJV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항상 하는 말이 바로 성경 66권이 모두 중요하다고 하는 것 아닙니까?

하지만 가톨릭은 외경을 포함시켰습니다. 물론 외경이라고 하지 않고 제2경전이라고 합니다. 그럼 그 역사적인 근거를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참고로 가톨릭은 진화론을 가설 이상으로 생각한다는 교황청의 발표가 있었습니다. 즉 과학에서 그것이 사실이라고 확신한다면 그 생각을 받아들인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정말 그런지 한 번 살펴보죠.

그리스도 생존당시 구약은 크게 2가지 사본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히브리어 사본이고 하나는 희랍어 사본입니다. 그런데 희랍어는 그 당시 쓰였지만 히브리어는 벌써 죽어가는 글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 당시 희랍어 사본을 사람들이 읽었습니다. 그 희랍어 사본은 흔히 70인역(다른 말로는 알렉산드리아 번역판)이라고 불립니다. 72인이 번역을 했지만 편의상 그렇게 말하죠. 이 사본은 현재 기원전에 쓰여진 흔적이 명백합니다. 이것을 부정하는 일부 개신교 근본주의자들이 있지만 그들의 주장은 일반적인 주장과는 다르며 사해문서등이나 기타 문헌에서 70인역을 인용한 흔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70인역은 외경을 포함합니다.

이제 신약성서를 봅시다. 신약성서에 인용된 거의 모든 문장은 70인역에서 인용되었습니다.
가장 중요한 차이점은 개신교 학계에서도 인정하는 마태오 복음 1장 23절입니다. "그런즉 주께서 몸소 징조를 보여 주시리니, 처녀가 잉태하여 아이를 낳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하리라" 이 말은 불행히도 히브리어판 이사야서 7장 14절에는 처녀라는 단어는 "알마"로 되어있습니다. 하지만 알마는 처녀가 아니라 소녀를 가르치는 말입니다. 이구절은 70인역에는 처녀로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성경을 뒤져 보시기 바랍니다. 대부분의 인용문 뒤에 70인역이라고 주가 되어있는 것을 보실수 있을 겁니다. 이 말은 이 인용문이 70인역에서 직접적인 인용을 했다는 것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외경이 성경이 아니라는 주장이 맞을까요?

이제 또 중요한 문제로 들어갑시다. 집회서의 문제입니다.

사실 다른 외경은 그다지 중요하게 부각되지 않지만 집회서는 상당히 중요한 교회의 글입니다. 한 번은 읽어보아야 할 중요한 글입니다. 이 집회서를 이방인을 개종시키는데 사용한 흔적은 많습니다. "에클레시아 스티커스"라고 불려진 집회서는 가톨릭 공동체에서는 널리 사용되었습니다. 즉 정경이라고 생각이 되니까 사도들을 포함한 많은 기독교 초기 신자들이 이것을 전도에 이용했지 외경이 가짜 성경이라면 이런일이 일어났을 까요??

하지만 유대인들은 이것을 가톨릭 공동체와는 달리 경전으로 포함시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기독교 공동체는 이것을 포함하고 있었습니다.

왜 포함시키지 않았는가를 한 번 생각해 볼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에 대한 자세한 글은 제 한계를 벗어나지만 그래도 권한다면 그당시 시대상을 한 번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에 대한 내용은 마빈 해리스의 "문화의 수수께끼"에 전투적 메시아즘에 대한 소개로 나옵니다.

꿈란의 동굴에서 발견된 문서들로 인하여 우리는 예수님이 살던 상황을 어느정도 소상하게 알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당시 글을 제가 정확히 말할 수는 없고 그당시가 몹시 혼란스럽고 마치 우리나라로 생각한다면 계엄령 바로전의 광주정도라고 생각하시면 될듯합니다.

유대인들은 그 당시 게릴라전을 주도했으며 절대로 평화의 주님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로마와 적대적인투쟁을 했으며 결국 그들이 참패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의 시련을 자신들이 성경을 잘못이해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기원후 90년에 성경을 다시 정하게 됩니다. 바로 잠비아 원로회의에서 기독교가 아닌 유대인들에 의한 자신들만의 구약의 정경이 형성되게 되는 것입니다. 그들은 다음과 같은 기준을 세웠습니다.

이런 기준으로 구약을 정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유대인들이 정한 것이지 기독교에서 정한것도 기독교 전통에 따른것도 아닙니다. 또한 유대인들은 교황제도가 형성되어 있는 (로마의 주교를 교황이라고 합니다) 기독교와 결별을 하기 위해서라도 그들과 다른 골수 분자가 되려 했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개신교의 성경이 66권이라는 말은 유대인의 전통을 따라서 정한 것입니다.

가톨릭은 정경을 아주 오랜 경험을 토대로 정해집니다. 상식적으로 알려진 것만 하더라도 콘스탄틴 대제 이전에는 수많은 글이 난무하여 정경을 정하지 못했고 그 결과 이단들이 판을 치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콘스탄틴 대제가 로마를 다스리자 그 이후에 정경의 형성이 가능하게 되었으며 실제로는 382년 다마수스 교황때 로마에서 첫 번째 원로회의에서 73권의 목차를 정했고 포고했으며, 카르타즈 원로회의에서 어거스틴 성인의 참여로 인하여 이것이 확정된 것입니다. 이점은 혹시 "숨겨진 성서"를 읽어보신 분은 정경 형성에 이 회의가 상당히 중요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결국 완전히 확정된 것은 교황 빈센트 1세가 405년에 정전으로 정하고 이것으로 정전의 형성은 완성되는 것입니다.

그 동안 기독교는 언제라도 외경을 빠뜨린 적도 없으며 집회서를 교회의 전도에 널리 사용되었다는 것을 기억한다면 과연 성경이 66권이라는 말이 믿을만한 이야기일까요?

이제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루터가 과연 왜 구약을 정할 때 유대인의 방식으로 정했을까 하는 점입니다. 아마도 이는 그가 믿음을 오직 성경이라고만 하고 전승을 분리시키고 역사적인 것을 무시하지 않고선 가톨릭이 오류를 범했다고 주장할 수 없었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는 "야고버서는 성경에서 빼도 좋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행위를 강조하는 야고버서는 필요 없다는 식으로, 완전히 빼진 않아도 지프라기 같은 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야고버서를 완전히 무시하는 글이 아니라고 하는 분들도 있지만 과연 그럴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