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의 글을 비평합니다. 인용문은 안으로 들여 썼습니다. 또한 인용문은 명조체이지만 제 반론은 Arial 체입니다.

돌연변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지만 대부분의 돌연변이는 세포에 치명적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듯 돌연변이는 치명적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종이 형성되는데 많은 돌연변이가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인간과 침팬지는 97%의 DNA 서열이 일치한다고 합니다. 아마 아미노산 서열을 비교해본다면 이것보다 더 놀라운 일치를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DNA 서열에서 3개의 DNA가 한 개의 아미노산을 지정하는데 마지막의 3번째의 경우는 사실 틀려도 아미노산에 영향을 주지 않는 경우가 상당수이기 때문입니다. 거기다가 아미노산이라고 성질이 비슷한 아미노산을 기준으로 다시 유사성을 비교하면 인간과 침프 사이의 DNA의 차이는 매우 적을 것임을 쉽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생물의 각종마다 유전적 한계가 있어서 다른 종으로 변할 수 없다라고 했는데 이미 우리는 생각보다 많은 종형성에 대한 자료를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까지의 글을 읽고 그말이 사실이라고 믿는 사람이 많겠지만 사실이 아닙니다. 우선 초파리가 잠자리가 되는 돌연변이는 아직 일어나지 않았고 앞으로도 일어나지 않겠지만 한종에서 새로운 종이 형성되는 것은 이미 많은 사례가 있습니다. 초파리와 잠자리는 이미 수억년전부터 존재해왔고 그 동안 돌연변이를 일으켰기 때문에 몇몇 돌연변이로는 초파리가 잠자리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최근의 창조과학자들은 자신들의 실수를 깨닫는 사람도 있어서 성경의 kinds가 종이 아니라 속이나 과정도 된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물론 그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 것 또한 성경에 근거한 내용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동물을 구분할 수 있는 것은 종단위입니다. 속은 너무나 다른 많은 것을 포함시키기 때문에 아담이 이름 짓는 작업은 충분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종이 아닌 속을 종류로 한다면 왜 같은 종류에서 서로 번식이 될 수 없는지를 설명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창조론자들은 종류가 종이라는 것을 쉽게 버리지 못합니다.

하지만 종의 형성이 이미 충분히 사례가 보고되었기 때문에 위의 주장은 한낱 허구에 지나지 않습니다.

아주 놀라운 말을 하고 있습니다. 캄브리아기의 지층의 화석들을 살펴보면 현존하는 생물을 발견할 수 있을까요? 뭐가 차이가 없다는 것일까요? 한번 그당시의 화석을 본적이나 있을까요? 거기서 우리가 안전하게 포유동물의 화석을 하나라도 발견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현존하는 척추동물의 어떠한 화석이라도 발견할 수 있을까요? 물론 절대로 발견하지 못했죠. 고생대의 캄브리아기에서 발견되는 것은 기껏해야 현존하는 생물종의 원시적인 형태일뿐입니다. 그것도 고도로 진화된 종이 아니라 진화의 초기단계에서 갈라져 나온 것을 말하는 것이죠.

위의 글이 1910년에 발견된 사실을 가지고 글을 쓰는 것입니다. 워낙 자료가 부족했나 봅니다. 미안하지만 이미 과학은 충분히 발달되어서 이미 상당한 양의 중간화석, 혹은 여러 가지 원시적인화석을 확보해 놓았습니다.  

마치 위의주장을 들어보면 어떤 시기의 어떤 동물이라도 다 완전한 형태의 동물이 존재하는 것으로 설명하는데 천만의 말씀입니다. 사실 무척추 동물은 제가 관심이 적었기 때문에 다음 기회로 미룬다고 하면 어류의 경우는 현존하는 어류의 경우와 비슷한 어류는 데본기에 찾아보기 매우 어려울 것입니다. 엽상형의 발을 가진 어류가 지금은 도대체 어디서 그렇게 흔하게 발견되나요? 아닙니다. 화석을 제대로 살펴본다면 그것을 중간에 어디에 넣어야 될지 모르는 화석이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것을 가지고 현재의 것과 거의 동일하다고 하는 것은 넌센스입니다.

그리고 다양하고 복잡한 생물이 갑자기 출현한 다는 것도 사실이 아닙니다.

또한 가장 흔하게 사례로 들고 있는 새나 박쥐의 경우는 약간 화석화에 문제가 되는 것들입니다. 그들은 우선 몸집이 작고 숲에 살았습니다. 숲은 산성토양이라서 쉽게 분해되고 화석으로 남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화석이 쉽게 발견되지 않는 것들일 뿐입니다.

이제 창조과학자들이 화석을 어떻게 다루는지 시조새를 보면서 한번 과학자와 비교해 보겠습니다.

이글을 쓴 이웅상 교수는 정직하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시조새의 날개의 근육의 형태로 봐서 지금의 새처럼 날지 못했다는 것은 현재의 과학계에서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이런 결과는 보여주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는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또한 잘못된 내용은 제리슨이 시조새의 두개골 연구를 통해 시조새가 전형적인 조류의 두개골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시조새는 부리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시조새는 이빨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명백히 새의 특징이 아니라 파충류의 특징입니다. 또한 꼬리의 뼈는 당연히 파충류의 특징입니다. 뿐만 아니라 골반의 peduncle 도 파충류의 특징입니다. 또한 머리의 콧구멍은 눈아래에서부터 분리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현재의 어떤 새도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그당시의 공룡에서 발견되는 특징입니다. 아마 이웅상 교수는 시조새의 머리 부분에서 공룡에게는 없고 시조새에만 있는 새의 특징을 하나도 찾아낼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시조새는 파충류가 아니라 새라고 우기고 있습니다. 남의 글이라서 책임이 없을까요? 천만에 아니라고 봐야 합니다. 왜냐? 바로 창조론자들의 이러한 주장에 대한 반론은 이미 수년전부터 지속적으로 기존의 과학자들이 제기했기 때문에 그가 정직했다면 이러한 글을 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시조새의 새의 특징이라고 주장한 부분이 별로 나오지 않아서 더 언급하기 어렵지만 한가지 지적하고 넘어갈 내용이 있습니다. 흔히 새의 특징으로 보일지도 모르는 wing bone은 원시적인 파충류의 특징을 보여줍니다.

또한 wishbone (furcula)즉 가슴의 창사골을 새의 특징으로 생각하는 모양인데 이것도 역시 백악기의 공룡에서게 발견되는 특징입니다.

그리고 시조새의 발은 파충류의 발처럼 생겼습니다. (흔히 영어에서는 claw라고 해서 고양이들의 갈고리 발톱이 있는 말을 말합니다.) 하지만 현존하는 새중에서 claw를 가진 새가 2종이 있기는 합니다. 그런데 claw를 가진 새가 존재한다는 것을 가지고 새의 특징이라고 하면 좀 어설프죠. 이것은 진화론으로 설명하는 것이 더 설득력있죠.

그리고 가장 큰 문제점은 시조새가 완전히 날 수 있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시조새의 몸안의 구조가 지금의 새와 같을 것이라고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말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시조새의 경우 살던 공간이 숲속에서 지금의 날 다람쥐처럼 다른 나무로 이동하는데 날개를 사용했을 것이라는 것이 중론이고 시조새는 완전히 날지 못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한 시조새의 뼈는 지금의 새와는 달리 완전히 꽉찬 형태입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공룡과 가까울까요? 현존하는 새와 가까울까요?

엄청난 변화라고 하는데 여기서 주의할 것은 시조새는 현재의 파충류에서 발생한 것이 아니라 공룡에서 진화가 일어났다고 생각됩니다. 실제로 새도 일종의 공룡이라고 말하는 학자들이 상당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말은 충분히 납득이 되는 말입니다. 다만 새의 화석만큼은 다른 척추동물처럼 많은 화석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은 인정하겠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새의 화석이 만들어지기 어려운 환경적인 이유가 있다는 일차적인 원인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당연한 결과입니다.

단속평형설은 어느날 갑자기 새로운 종이 탄생한다는 이론이 아닙니다. 어떤 시기에 갑작스런 진화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에 대한 사례가 다행히도 있습니다. 사실 이러한 생각은 진화가 환경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 환경이 전혀 바뀌지 않는데 진화가 무조건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납득이 가질 않을 겁니다.

굴드의 이론은 중간화석이 적게 발견되는 이유를 설명하는 것이지 전혀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굴드의 이론이 있어도 문제는 전혀 되지 않습니다.

굴드의 이론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공룡의 진화중에 나타납니다. 해수면이 높아져서 특정한 지역으로 공룡이 모여들 게 되고 거기서 생존경쟁이 치열해지면서 50만년동안 진화가 급격히 일어나고 다시 해수면이 낮아져서 다른 지역으로 변한 종들이 퍼지게 되면 나중에 볼 때는 갑자기 새로운 종이 탄생한 것으로 보이겠죠. 이것에 대한 사례는 중간화석의 정리부분을 살펴 보시면 됩니다.

위의 말은 "간격이 커질 경우는 설땅을 잃게 된다"는 말은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과연 간격이 그렇게 클까요? 제가 알기로 포유동물에서 고래의 조상까지는 한 10개 정도의 중간화석이 있습니다. 아마 창조론자들은 없다고 하겠죠. 없다고 한 그 책이 도대체 언제 것인지 확인해 보시길 바랍니다. 아마 1900년대 초의 책일 겁니다.

그렇지 않죠. 이것은 약간 다른 문제입니다. 최초의 인간이 누구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예를들어 인간과 기니픽정도만이 비타민 C를 생합성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아서 인간은 처음에 매우 적은 집단에서 진화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므로 그 종이 매우 불안한 진화를 거치다가, 어느정도 안정되어서야 화석이 발견되는 것이죠. 뿐만 아니라 결정적인진화를 거친 시기와 종이 갈라져 나온 시기가 일치할 필요성은 없는 것입니다. 즉 다시 말해서 20만년전에 격리되기 시작했지만 그 종이 5만년전에 급격한 진화를 거쳤을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이 말은 프레드 보일의 주장과 다를바가 없죠. 복잡하기 때문에 진화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주장에는 자연선택을 전혀 언급하고 있지 않고 있죠.  자연 선택으로 아무리 복잡한 것이라고 가능할 수 있다는 말은 절대로 하지 않을 겁니다. 이점에 대해서도 정리를 했습니다.

또한 러브록의 가이아에 대한 글을 읽어본다면 자연계는 생각외로 몇가지만 가지고도 복잡하게 조절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 게 됩니다. 그러므로 가이아 자체는 비과학적인 용어지만 그가 주장한내용의 상당 부분, 즉 어떻게 각 구성 성분이 쉽게 복잡한 구조를 만들 게 되었는지는 충분하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우선 이말은 매우 재미있는 말입니다. 과학자들은 자연계의 질서와 법칙이 불변이라고 가정한다고 합니다. 과연 그렇습니까? 어느정도 맞는 부분도 있고 아닌 부분도 있겠죠. 과학의 내용중에서 불변이라고 생각되는 부분은 많지는 않습니다. 대학교에서 배우는 것을 가지고 말해보면 1학년때 배우는 것은 거의 바뀌지 않을 겁니다. 그러나 대학원에서 배우는 내용의 상당부분은 바뀌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 내용은 아직 명확하지 않은 내용을 추론하고 이성적으로 판단하는 내용이 포함되기 때문입니다. 그런 것 모두가 분명히 과학입니다.

그러므로 가설이라도 해도 그것은 과학이 됩니다. 진화론을 가설이라고 해도 분명히 그것은 과학이므로 교과서에서 가르쳐야 합니다. 또한 이글의 저자는 지금까지 진화론이 과학적으로 비합리적이라고 주장하면서 진화론을 부정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이웅상 교수는 신에 대한 이야기는 극히 삼가고 과학적으로 볼 때 진화론은 문제가 많다고 추론하고 그에 맞는 반론을 제시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전 그 반론의 근거가 합리적이지 못하다고 말하고 변론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것이 가능하다는 자체가 진화론이 과학이라는 증거입니다. 진화론은 검증이 가능한 이론입니다. 그러므로 과학이론입니다.

이제 반대의 입장에서 창조론이 과학인가 살펴 봅시다.

일견 과학으로 보입니다. 예를들어 창조과학도 진화론의 비평만 있는 것이 아니라 수권층이나 기타 자신들만의 부분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언 듯 보기엔 과학적인 설명을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과학이 아니라는 것은 쉽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우선 설명이 불가능한 부분에는 모조리 신을 배치하여서 신의 기적으로 공백을 메꾸고 있습니다. 그럼 도대체 원래 틀린 것인지 아닌지를 누가 확인할 수 있습니까? 그리고 진화론의 많은 부분을 공격하면서 마치 창조과학이 맞다고 주장합니다. 사실 진화론이 그 만큼 헛점이 많다고 한다면 설사 창조과학이 과학이 아닐지라도 우리는 가능성을 열어두는 겸손함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요? 창조과학자들이 주장하는 많은 부분은 실제로는 거의 문제가 되지 않는 부분이거나 잘못된 해석, 혹은 억측으로 이루어진 부분입니다. (여기서는 제가 과문한 탓에 시조새의 부분만을 다루었습니다. )

창조과학이 과학이라고 볼 수 없는 이유의 결정적인 것은 신을 가정하고 기적으로 설명을 한다는 것이지만 실질적으로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은 그들의 이론이 틀려도 결코 수정하지 않는 것과 사례들이 모두 믿을 수 없는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과학은 철학과 다른 것입니다. 막연하게 이 세상은 창조되었을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은 과학이 아니라 신학이나 철학에서나 가능한 발상입니다. 막연히 진화가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역시 과학이 아닙니다. 과학은 적접적인 사례에서 이론을 만들어 내고 검증하는 것입니다.

창조과학은 그들의 믿음 말고는 창조를 증거할 특히 성경의 문자적 해석의 창조를 설명할 수 있는 아무런 근거를 가지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지속적으로 주장함으로써 과학이 아님을 쉽게 알 수 있는 것이고 우리는 이러한 믿음을 Dogma라고 하여 학교의 교육에서 교육을 금지시키는 것입니다.

 (아래 인간창조의 수수께기라는 부분이 있으나 그 내용은 진화론을 공격하는 내용이 아니라 지적 설계론을 주장하는 바이므로 별 반론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저자도 이웅상 교수가 아니라 다른 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