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ARE THE CREATION "SCIENTISTS"?

by Lenny Flank, 1995

창조과학자들은 누구인가?

번역 : 불가사리, 1999

아래 싸이트의 글을 번역한 것입니다. 영어 원본은 생략했습니다.

http://www.geocities.com/CapeCanaveral/Hangar/2437/whoare.htm


창조과학자들은 누구인가?

다양한 사람들이 스스로를 원조 창조과학자라고 주장하고 있다. 간혹 로마 카톨릭 종파에 속한 사람들도 있긴 하지만, 거의 대부분의 창조과학자들은 근본주의 개신교 종파에 속해 있다. 창조과학자들 모두의 공통점은, 천지창조의 묘사나 아담과 하와 그리고 노아의 홍수 등과 같이 성경의 원본에 기록된 모든 내용은 문자 그대로 정확하다는, 성경의 무오성에 대한 믿음이다.

모든 정치운동이나 종교운동과 마찬가지로, 창조론에도 여러 유파가 있다. (어떤 자료에 의하면 1984년 당시 미국 내에는 전국규모의 창조론자 단체가 22개 이상 있었고, 주 규모나 지방규모의 단체는 최소한 54개가 있었다.)

여러 창조론 중의 "날-시대"유파는 창세기에 언급된 "날"은 하루 24시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는 엄청나게 긴 시간을 상징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아마도 현재 가장 널리 알려진 "날-시대" 유파는 '여호와의 증인'일 것이다. 또 다른 유파는 "간격"이론가들인데, 창세기 1장1절과 1장2절 사이에 성경에는 직접 언급되지 않은 오랜 시간 간격이 있었고 6일간의 창조는 그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 이루어졌다고 주장한다. 매스컴을 전도의 수단으로 이용하는 복음설교자들 중에 "간격"이론가들이 많이 있다. 끝으로, 창조는 성경에서 묘사한 것과 똑같이 일어났으며 우주와 모든 생명은 수천년전의 6일 동안 창조됐다고 주장하는 "완고한" 창조주의자들이 있다. "날-시대"유파와 "간격"유파는 진화의 증거는 받아들이지 않지만 지구가 아주 오래됐다는 지질학적 증거는 받아들이는데, 통상 이들을 뭉뚱그려 "오래된 지구 창조론자"라고 부른다. 반면에 우주전체의 나이는 6,000년에서 10,000년 정도라고 주장하는 완고한 창조론자들은 "젊은 지구 창조론자"로 분류된다.

"유신론적 진화론자"로 불리는 유파도 있는데, 이들은 진화가 신이 생명을 창조한 방법일 뿐이며 과학과 성경의 모순은 없다고 주장한다. 대부분의 과학자들과 마찬가지로 거의 모든 주요 기독교 종파들이 유신론적 진화론을 지지하고 있다. 유신론적 진화론자들은 신이 우주를 창조했다고 주장한다는 점에서는 "창조론자"이지만, 근본주의 창조론자들에게는 악마의 일을 하고 있는 "적"으로 간주된다. 진화론이 기독교 교리와 모순된다는 믿음이 근본주의 창조론자들을 규합하게 하는 단 하나의 요인이므로, 근본주의 창조론자들을 "반진화론자"로 분류하는 것이 더 적절할 지도 모른다.

창조과학운동은 "젊은 지구 창조론자"들이 좌지우지하며 모든 주요 창조론 단체를 이끌고 있다. '젊은 지구 창조론자'들의 관점은 다양한 반진화론, 또는 그들이 원하고 있는 "진화론과 창조론의 공평한 처우" 정책이다. 예를 들면, 아칸소 주의 "공평한 처우" 조례는 "창조과학"을 젊은 지구 창조론에 따라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 창조과학은 다음과 같은 사항을 시사하는 과학적 증거와 추론을 포함한다 (1) 무에서부터 우주, 에너지, 그리고 생명의 순간적 창조 (2) 하나의 유기체에서 모든 생명체의 종이 진화하기 위해서는 돌연변위와 자연선택은 불충분 (3) 원래 창조되었던 식물종과 동물종은 제한된 범위 내에서만 변화가 가능 (4) 사람과 원숭이는 별도의 계통 (5) 전지구적 홍수 발생을 포함한 격변에 의한 지구 지질학의 설명 (6) 상대적으로 가까운 과거에 지구와 생명체 출현 (아칸소 주의회 조례 490, 1981)후에 "과학적 창조론"으로 불리게 되는 젊은 지구론의 기원은 제7일재림론 근본주의자인 죠지 맥레디 프라이스까지 거슬러 올가갈 수 있는데, 그는 성경을 문자 그대로의 사실로 받아들였다. 프라이스는 1923년에 출판한 "새로운 지질학"이라는 책에서 다음과같이 주장했다. (1)오늘날 우리가 보고 있는 지질학적 특징은 과학자들이 기술한 느린 지질학적 과정이 아니라 노아의 홍수 때문이다. (2)지층이란 노아의 홍수에 의한 심해퇴적물일 뿐이며 다양한 종류의 모든 화석은 노아의 홍수로 익사한 유기체의 시체일 뿐이다. (3) 전통적인 지질학은 악마의 일을 행하고 있는 과학자들이 의해 의심할 줄 모르는 대중들에게 퍼뜨려지고 있는 사기다. 그에 표현에 따르면 전통적인 지질학은 "마지막 날에 사람들을 현혹시키기 위해 악마가 사용하는 속임수 중의 몇 가지"에 속한다. 프라이스의 의견은 "홍수지질학"으로 알려져 있다.

지질학자들이 프라이스를 미치광이의 헛소리로 취급해버리고 오류와 왜곡으로 점철된 그의 "새로운 지질학"을 조롱하는 동안, 그 책은 신앙싶 깊은 근본주의자들을 감동과 흥분에 휩싸이게 했으며, 근본주의자들은 프라이스의 책을 "성경이 문자 그대로 옳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증명한 첫 번째 책"으로 인용했다. 심지어 스콥스 재판에서는 지질학자가 아닌 프라이스가 과학전문가로 인용되기까지 했다.

1935년에 프라이스는 최초의 전국적 규모 창조론자 단체인 '종교와 과학협회(이하 RSA)'를 결성하는데 기여를 했다. RSA의 목적은 과학적 자료로 성경의 내용을 지지하려는데 있었다. 결성된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RSA는 프라이스의 홍수지질학을 받아들이는 쪽과 그렇지 않은 쪽으로 양분됐다. 근본주의 기독교 계열의 몇몇 대학에서 생물학을 가르치던 루터교 신학자 테오도르 그래브너는 RSA 설립자 중의 한사람이었는데 홍수지질학의 증거는 없다는 것을 다음과 같이 단호하게 주장했다. "지층, 침식, 그리고 화석에 대한 홍수이론을 읽어보았음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산들을 보면 홍수이론을 전혀 믿을 수 없게 된다." 이러한 내부 분열로 인해 1937년까지 RSA는 완전히 붕괴됐다.

RSA가 해체된 직후, 프라이스의 홍수지질학 지지자끼리 모여 홍수 지질학 협회(이하 DGS)를 결성했다. 프라이스는 이 협회의 공동설립자 중의 하나였으며 가장 뛰어난 회원이었다. RSA의 설립자 중 하나였던 제7일 재림론 전도사인 하롤드 클라크도 DGS의 공동설립자였으며, RSA 설립 당시 그는 캘리포니아의 재림론대학에서 생물학을 가르치고 있었다. 미네소타 주립대학에서 온 헨리 모리스라는 대학원생도 DGS에 합류했는데, 그의 이름은 훗날 창조론의 역사에서 아주 빈번히 거론된다.

내부 갈등에 의해서 해체된 RSA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DGS는 홍수지질학에 동조하는 사람들만 회원으로 받아들였다. 이러한 사전조치에도 불구하고 태양계의 나이에 대한 의견 차이 때문에 다시 내분이 일어났다. 젊은 지구 창조론자들에게 있어서 아주 오래된 태양계와 성경의 창세기사이에는 모순이 없다는 오래된 지구 창조론자들의 주장은 이단으로 여겨졌다. DGS는 1948년에 와해됐다.

이 와중에 새로운 창조론자의 모임이 결성됐는데 그냥 무시되기 일수였던 DGS보다 영향력이 커졌다. 이 모임은 과학이 성경을 입증한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1941년에 미국 과학 연합(ASA)이라는 이름으로 결성됐다. 과학보다는 신학에 더 큰 비중을 두었던 RSA나 DGS와는 달리, ASA는 정식 학위 소유자만을 회원으로 받아들였다. ASA의 회원이 되려면 아래의 회원서약서에 서명을 해야만 했다. "나는 원래 주어진 성경 전체가 성령의 영감으로 쓰여진 신의 말씀이며 믿음과 행위에 대한 무오류의 유일한 지침이라는 것을 믿는다. 신은 성경의 저자이며 우리 주위의 물질세계를 창조하고 유지시키는 분이므로 과학적 사실과 성경의 기록 사이에 어떠한 차이도 상상할 수 없다." 이미 창세기를 문자 그대로의 사실로 받아들이는 과학자들에게만 회원자격을 주는 이런 전략은 시간이 흐른 후에도 계속 반복된다. 성경이 문자 그대로 사실이라는 것을 입증하는 수단으로 과학지식을 사용하는 ASA는 최초의 "창조과학" 단체가 됐다.

ASA가 결성될 당시에는 홍수지질학협회(DGS)와 관련이 없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DGS측이 "반진화론 정기간행물"을 공동으로 출판하자고 먼저 제안했다. 제7일재림론에 치우친 DGS측을 곱지 않게 보던 ASA의 수뇌부는 그런 제안을 묵살했다.

그러나 결국에는 홍수지질학이 다시 한번 논란의 대상이 됐을 때 과학적 권위에 의존하려는 ASA의 입장 때문에 모든 것이 원점으로 돌아갔다. 화학자이자 지질학자인 로렌스 컬프 박사는 홍수지질학이 명백히 틀렸을 뿐 아니라, 성경에 근거한 창조론을 조롱거리로 만들고 있을 뿐임을 지적했다. 그가 주장한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이 비과학적인 홍수지질학은 학식있는 사람들에게 복음이 널리 전파되는 것을 심각하게 방해하고 있다." 곧이어 컬프의 의견을 지지하는 생물학자 프랑크 카셀은 1951년 ASA에 제출한 논문을 통해 단호한 어조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진화란 후손으로 계속 이어지는 동물과 식물의 점진적 또는 급진적 변화이다...이러한 변화는 입증될 수 있다. 따라서 진화는 사실이다." 카셀은 ASA가 과학적 권위를 유지하려면 진화에 대한 관점을 완전히 바꿔야하며 유신론적 진화론을 ASA가 수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은 부분적으로 성공을 거두었다. ASA는 오래된 지구 창조론을 지지하는 "논쟁의 여지가 있는 과학교육"이라는 책을 출판하긴 했지만, 현재의 ASA는 창조과학의 질문에 대해 공식적 입장을 표명하고 있지 않으며 회원들의 대부분은 유신론적 진화론자이다.

젊은 지구론자들은 컬프와 카셀의 공격으로부터 자신들의 창조과학을 방어했다. 1953년에 열린 ASA의 연례회동에서 헨리 모리스는 "최근의 창조와 전우주적 홍수에 대한 성경적 증거" 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했다. 충실한 성경 문자주의자이자 젊은 지구 창조론자인 모리스는 홍수가 지구에 주는 영향을 연구하기 위해 수력공학을 전공으로, 지질학을 부전공으로 택할 만큼 꼼꼼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미네소타 대학에 입학하던 1946년에 그는 홍수지질학을 옹호하는 "당신이 믿을 만한 것"이라는 제목의 소책자를 출판했다. 모리스는 대학원생의 신분으로 DGS에 가입했었다.

모리스는 1953년에 열린 ASA의 연례회동에서 홍수지질학과 젊은 지구 창조론에 흥미를 갖고 있던 신학자 존 위트콤 2세를 처음 만났다. 1957년에 완성된 "창세기 홍수"라는 제목의 신학박사 논문에서 위트콤은 노아의 홍수가 미치는 지질학적 영향과 역사성을 자세하게 변론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의 학위논문을 책으로 발간하려던 위트컴은 그 책에서 홍수지질학을 다룬 부분을 지질학자가 쓴다면 더 큰 파문을 일으키리라 생각했다. 위트컴은 창조론을 지지하는 지질학자를 몇 명 접촉했으나 전부 거절당했다. 그는 결국 수력공학자인 모리스에게 접근했고, 모리스는 망설이던 끝에 그 책의 공동저자가 되는 것을 받아들였다. "창세기 홍수"라는 제목의 책은 여러 명의 신앙심 깊은 근본주의자들로부터 재정적 지원을 받아 1961년 2월에 출판됐다. 후에 기독교 재건운동을 펼친 루아스 러쉬두니도 그 지원자의 한사람이었다.

 

지질학자들이 보기에 "창세기 홍수"라는 책은 맥크레디 프라이스가 1923년에 출판했던 "새로운 지질학"을 새롭게 고친 한심한 재탕에 불과했다."창세기 홍수"는 오래된 지구 창조론들로부터도 전지구적 홍수에 대한 지질학적 증거가 전혀 없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런 비판에 대해 위트컴과 모리스는 성경의 창세기에 전지구적 홍수가 있었다고 기록돼 있으므로 반드시 전지구적 홍수가 있었어야만 한다고 반박했다. 다음은 1961년에 위트컴과 모리스는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정말 중요한 논점은 다양한 지질학적 증거의 세부사항을 정확히 해석했느냐의 여부가 아니라 신 자신의 말씀인 성경에서 신이 무엇을 계시했는가 이다." 그러나 ASA는 "창세기 홍수"에 대해 계속 비판적이었는데 1992년에 모리스는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문제의 핵심은 '성경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이다."(역자 주 : 이 발언에 의해 모리스는 자신의 주장이 성경에 대한 맹목적 신앙에 근거하고 있음을 자백한 셈입니다.)

모리스가 가르치고 있던 남침례교는 모리스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밝혔고, 홍수에 대한 신학적 견해차 때문에 모리스는 남침례교를 떠났다.(역자 주: 남침례교는 극도도로 보수적이며 미국 개신교에서 아주 강력한 영향력을 지니고 있다.) 그 직후에 모리스는 스스로 대학침례교를 결성했으며, 초청목사 중에는 당시로서는 별로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채 버지니아주 린치버그 근교에서 활동하던 제리 팔웰도 끼어 있었다. 그 이후로 팔웰과 모리스는 암묵적인 동반자였으며, 팔웰의 모랄메져리티 주식회사는 모리스가 결성한 창조론자 단체들을 재정적으로 지원해왔다. 팔웰은 모리스가 저술한 창조론 서적을 자신의 텔레비젼 프로그램 시청자들에게 끈질기게 선전해왔다.

홍수지질학에 대한 ASA 내부의 논쟁을 겪고난 젊은 지구 창조론자들은 ASA가 진화론에 대해 관대한 태도를 취한다고 확신했다. 식물육종학자로서 장기간 창조론자 단체에서 활동해왔던 식물육종학자 월터 램머츠는 1961년 말에 헨리 모리스와 듀안 기쉬와 합류하여 ASA 내부에 "반진화 원로회"를 구성했다. 램머츠는 창조론자의 관점으로 보아도 극단론자였다. "창조된 종류" 내에서의 제한된 진화는 받아들이는 대부분의 젊은 지구론 창조론자들과는 달리, 그는 소진화를 포함한 어떠한 형태의 종분화도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정통침례교도이자 근본주의자인 기쉬는 1950년대 말에 버클리 대학에서 생화학 박사학위를 받은 후 ASA에 가입했다. 그는 업존회사에서 단백질을 연구하는 연구원으로 근무했다.

모리스, 기쉬, 램머츠의 3인은 1963년에 창조연구위원회(CRC)라는 저돌적 창조론자 단체를 결성했다. 창조연구위원회는 후에 창조연구회(CRS)로 이름이 바뀌어 현재에 이른다. CRS는 "현대적 창조론의 대부"라 불리는 헨리 모리스가 최초로 이끌게 된 전국적 규모의 단체였으며, 이 단체는 결성되자마자 모리스의 관점을 그대로 수용했다. CRS의 목적은 그 선언문에 나온 바와 같이 "식물과 동물 그리고 인간을 포함한 우주의 물질세계는 인격신의 직접적 창조의 결과라는 명제를 입증하는 연구결과를 출판하는 것"이었다. 예수를 전도하는 효과적인 수단으로서 과학적 자료를 활용하기로 결심한 모리스는 성경의 무오류성에 근거한 자신의 홍수지질학 모델을 "대체과학"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그는 생물학 교육과정에서 "진화과학"과 "창조과학"을 동등하게 다루는 법령이 주의회를 통과할 수 있는 가능성 여부도 아울러 모색하기 시작했다.

모리스의 관점을 정당화시키기 위해, CRS는 ASA가 했던 방법대로 과학분야의 정식학위를 소지한 사람들만 회원으로 받아들였다. 과거의 창조론자 단체에서 볼 수 있었던 관념론적 논쟁이나 내분을 막기 위해, CRS는 모든 회원들에게 길고 상세한 내용의 서약문을 맹세하게 했다. 그런 맹세는 회원들의 연구활동 범위를 창세기의 문자적 해석, 젊은 지구론자의 관점, 그리고 홍수지질학 모델로 제한하는 것이었다. 다음은 CRS의 서약문이다.

"(1)성경은 기록된 신의 말씀이며,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것이므로 성경의 모든 원본에 쓰여진 모든 내용은 역사적으로 그리고 과학적으로 옳다. 이는 자연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기원에 대한 성경의 기록은 단순한 역사적 진술을 있는 그대로 표현한 것임을 의미한다."

"(2) 사람을 포함한 생명체의 모든 기본적인 형태는 성경에 기록된 대로 일주일 동안 신이 직접 창조한 것이다. 그 이후에 일어난 모든 생물학적 변화는 원래 창조됐던 종 안에서의 변화일 뿐이다."

"(3) 통상 노아의 홍수라고 불리는 창세기의 대홍수는 그 규모와 파급효과가 전세계에 걸친 역사적 사건이다."

"(4) 우리는 에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주인이자 구세주로 받아들이는 기독교 과학자들로 구성된 단체이다. 모든 인류에게 구세주가 필요하다는 우리의 믿음은 아담과 하와가 한 쌍의 남녀로 특별히 창조되었다는 사실과 창조에 이어진 그들의 타락에 근거한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구세주로 영접하는 것에 의해서만 구원받을 수 있다."

스스로 "과학적"이라는 것을 보이려고 노력하는 단체가 모든 회원들에게 이미 결론부터 내리고 시작하는 자신들의 신앙을 확인하는 맹세를 요구한다는 것은 정말 이상한 일이다. 결국 CRS의 목적은 과학적 연구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근본주의자의 성경문자주의를 전도하는데 있다는 것이 분명하다. 실제로, 창조행위를 증명하기 위해 과학적 자료를 사용하려는 시도는 종교적 내용의 의미를 약화시키거나 싸구려로 만들어 버리기 때문에 과학으로 성경을 설명하려 해서는 절대로 안된다고 반대하는 창조론자들도 많이 있다. 그런 반대론자 중에서 가장 목소리를 크게 내는 사람은 모리스와 함께 "창세기 홍수"를 출판했던 위트컴이었는데 다음과 같이 불만을 표시했다. "이런 홍수 모델을 따른다면 유태교 창조과학자일 수도 있고 이슬람교 창조과학자일 수도 있다." 또한 위트컴은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성경이나 창조주로서의 예수를 전혀 언급하지 않고도 몇몇 학교에서 창조론과 진화론을 동등하게 가르치게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실로 엄청난 대가를 치뤄야 한다. (기독교의) 절대적 확실성은 사라지며, 살아 움직이며 권위있는 신의 말씀이 주는 영적 충격은 무디어지게 된다." (역자 주 : "창세기 홍수"는 위트컴의 신학박사 학위논문이었습니다. 그 논문을 책으로 출판할 때 위트컴은 그 책에서 다룬 지질학분야에 대해 모리스를 공동저자로 삼았습니다.)

이 와중에 램머츠는 모리스가 새로이 내세운 "창조과학"을 현상적 증거만을 가지고 계속 공격했다.(역자 주 : 램머츠는 모리스 및 기쉬와 함께 CRS의 전신인 CRC를 공동 설립했던 식물육종학자이며 어떠한 형태의 종분화도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는 근단론적 창조론자입니다.) 친화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모리스가 즐겨 사용하던 도구가 물리학의 가장 기본적 법칙인 열역학 제 2법칙이었다. 모리즈의 논리전개에 따르면 열역학 제 2법칙 때문에 무질서한 상태의 계가 질서가 잡힌 상태로 변화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간단한 단세포 생물에서 복잡한 육상척추동물로 변화한다는 진화론자들의 대전제는 열역학 제 2법칙을 어겼다는 것이 모리스의 주장이었다. 램머츠는 열역학 제 2법칙을 완전히 잘못 이해하고 있는 모리스의 이런 주장을 "황당무계한 열역학 쓰레기"라고 지적했다. 영국의 창조론자인 윌더 스미스 역시 모리스는 열역학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다는 것을 지적했다.

1978년에 창조론자 성경과학 소식지(CBSN) 편집자인 월터 랭은 창조를 과학으로 설명하려는 시도는 불필요할 뿐 아니라 영적인 내용을 왜곡한다고 생각하는 여러 창조론자들의 의견을 다음과 같이 되풀이했다. "진화론에서 창조론으로 개종한 사람들 중 단지 5% 정도만이 창조에 대한 엄청난 증거가 자연세계에 실존한다고 주장한다." 강조하건대, 램머츠와 기쉬 그리고 모리스는 그들이 과학에 대한 어떠한 경험도 쌓기 이전에 이미 헌신적인 창조론자였다.

그러나 미국내의 과학과목에서 창세기를 가르치기 위해 창조과학을 활용하려는 모리스의 헌신적인 시도는 계속됐으며, 창조론이 종교가 아니라 과학인 것처럼 보이기 위해 노력했다. 다음은 모리스의 설명이다. "따라서, 창조과학은 종교적 믿음으로서가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과학적으로 설명 해주는 대체과학으로서 되살아 나고 있다." 모리스의 저서인 '과학적 창조'는 공립학교 생물학 교과과정에 적합하도록 꾸며진 창조과학의 결정판이다.

1970년에 모리스와 모랄메져리티 주식회사의 근본주의 개신교 전도사로 스코트 기념 침례교에서 활동하던 팀 라헤이는 기금을 모아 산디아고에 비공인 성경학교인 기독선민대학(CHC)을 설립했다. 이 대학의 1981년도 카탈로그에 따르면 개설하는 몇 개의 과학과목은 "철저한 창조론자의 관점과 성서적 관점"에서 가르친다고 돼있다. 그 카탈로그에 따르면 "성경의 기준은 진화론의 사실 가능성을 배제한다." 모리스 자신도 기독선민대학(CHC)에서 창조과학에 대한 과목을 하나 가르치고 있다.

모리스는 완고한 창조론자들의 집단인 성경과학협회(BSA)의 지역분과 설립에 기여했던 동료 창조과학자 켈리 세그레이브즈 및 닐 세그레이브즈와 함께 창조과학연구센터(CSRC)를 설립하기 위해 힘썼다. 창조론자들이 창조과학을 공립학교에서 가르칠 수 있게 된 후 사용할 "창조과학교재"를 만들어 낸는 것이 CSRC의 설립목적이었다. 모리스는 과학연구를 위해 기독선민대학(CHC) 부설로 창조연구소(ICR)도 설립했다. 창세기가 문자 그대로의 사실임을 과학적으로 입증하려는 것이 ICR의 설립목적이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CSRC 내부에서 모리스와 세그레이브즈에 주도권 다툼이 일어났다. 그 결과 CSRC의 주도권은 세그레이브즈 측의 손에 넘어갔고 CSRC는 기독선민대학(CHC) 및 창조연구소(ICR)로부터 갈려져 나갔다. CSRC와 CRS는 현재까지 계속 공존하고 있지만 1970년 이후에 창조론 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것은 모리스와 창조연구소(ICR)이다.

ICR의 종교적 색채를 누그러뜨리고, ICR이 성경과학연구소가 아니라 순수한 비종교적 과학연구소라고 위장할 필요성이 탕조론자들 사이에 대두된 1980년대 초까지 ICR은 기독선민대학(CHC) 산하였다. 오늘날의 ICR은 자신들이 어떠한 종교단체에도 속해있지 않은 과학연구소라는 소설같은 주장을 계속하고 있지만, 헨리 모리스와 듀안 기쉬를 포함한 대부분의 직원들은 아직도 기독선민대학(CHC)의 겸임교수들이다. ICR 측은 스스로 순수하게 과학을 추구한다고 주장하면서도 생물학 분야에서 한번도 현장 연구를 한 적이 없다. 또한 IRS는 "과학 이외의 분야를 연구하는 종교연구소" 는 명목으로 세금을 계속 면제받고 있다.

보다 규모가 작은 창조론자들의 단체도 여러 개 있다. 오래 전에 설립된 지구과학연구소(GRI)는 아직 활동중이다. 이 연구소는 제7일재림교파 계열의 로마린다 대학에 본부를 두고 있다. 오래된 지구 창조론을 고수하는 GRI는 법적 또는 정치적 투쟁 대신에 생물학과 지질학을 가르치는 교사들에게 창조론자의 관점에서 쓴 참고서적을 제공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가끔 이곳 저곳의 신문지상을 장식하는 작은 단체로는 텍사스주 그렌 로즈 근처의 창조증거박물관(CEM)을 들 수 있다. 이 박물관을 운영하고 있는 칼 버어는 셔우드공원침례교회 지하실에 위치한 비공인 성경대학인 첨단교육대학에서 인류학 박사락위를 받았다. 이 박물관이 보유한 주요 흥미 거리는 근처에 있는 팔룩시 강가의 공룡계곡주립공원에서 발견됐다는 소위 "사람 발자국"이다. 창조론자들은 그 주립공원에서 공룡과 사람의 발자국이 같이 존재하므로 공룡과 사람이 공존했다고 주장한다. 버어는 공룡뼈와 함께 묻혀 있는 사람이빨 화석을 발견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사람 발자국과 사람이빨 화석에 대한 버어의 주장이 틀린 것으로 판명된 이후, 대부분의 창조론자들 조차 그를 괴짜 취급하고 있다.

지금도 활동 중인 또다른 창조론 단체로는 오래된 지구 창조론을 지지하는 "사색과 윤리 재단(FTE)"이 있다. FTE는 창조론자의 관점에서 저술한 생물학 교재 "팬더와 사람"을 출판했다. 이 책을 교과서로 인정한 주정부는 아직 없으나 지방의 학교에서는 간혹 찾아볼 수 있다. FTE는 스스로를 과학단체라고 주장하지만 세금면제를 위해 그들이 연방정부에 제출한 서류에는 "기독교 복음을 선언, 출판, 전도하며 바이블을 이해하는 것이 FTE의 목적"이라고 기록돼 있다.

ICR이나 CSRC와 같은 극단적 창조론자들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미쳤다고 볼 수 밖에 없는 창조론자 단체도 있다. 그중에 제일 잘 알려진 단체는 평판지구학회(FES)이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지구는 과학적 관점에서 보건 종교적 관점에서 보건 정말로 평평하며, 지질학적 자료와 천문학적 자료를 제대로 해석하면 지구가 평평하다는 사실을 입증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최근 이들은 최근에 디스커버리 유선방송을 통해 방영된 텔레비젼 특집에 등장했었다.) 또다른 광신적 단체로는 티코니안 학회(TS)가 있다.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FES와 달리 이들은 지구가 구형이하는 것을 받아들이지만 과학적이고 성경적인 근거를 들어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며 태양은 지구 주위를 돌고 있다고 주장한다.

창조론자 단체 중에서 가장 최근에 설립된 것은 모랄메져리티 주식회사 산하의 자유대학 부설로 1988년에 설립된 창조연구센터(CCR)이다. 팔웰 및 모랄메져리티 주식회사는 창조연구소(ICR) 및 다른 창조론자들과 김밀한 유대관계를 유지해왔다.(헨리 모리스는 자유대학으로부터 1989년에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 자칭 세계최대의 창조박물관을 보유하고 있다고 자랑하던 CCR은 ICR의 전직 간부인 레인 레스터 박사가 이끌고 있었으나 재정문제로 인해 문을 닫고 말았다.

CCR의 영향력은 자유대학과의 강력한 연계에서 얻은 것이다.리버티 대학의 모든 학생들은 "생명의 역사"라는 1학기 짜리 과목을 반드시 들어야 했다. 이와 아울러 창조론자의 관점을 크게 강조한 자유대학의 생물학 강의는 버지니아 주정부로부터 교사교육 프로그램으로 인가까지 받았다. 이는 몇 년 내에 창조과학으로 교육받은 교사들이 버지니아 주 뿐 아니라 다른 주에서도 교사직장을 구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어떤 창조론자 단체의 실적도 CCR의 이 대단한 업적과는 비교가 안된다. ICR에도 대학원과정이 있지만 교사 훈련 프로그램으로는 인가받지 못한 상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ICR은 창조론 운동에서 선구자 역학을 하고 있으며, 오늘날 우리 주변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대부분의 창조론 서적은 ICR에서 출판한 것이다. ICR은 그리스도에 관련된 영화를 비롯한 창조론 영화들도 제작하고 있다.) ICR은 회원들의 과학분야 학위 문제에 대한 시끌벅적한 자화자찬을 멈추지 않았다. ICR의 회원이 되려면 그들 스스로가 선언했듯이 최소한 한 개 이상의 과학분야에 대해 석사 이상의 학위를 가지고 있어야 했다. 그러나 CRS와 마찬가지로 ICR은 회원이 되려면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가 주인이며 구세주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창세기가 문자 그대로의 사실임을 믿는 맹세문에 서명해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가급적이면 언급하지 않으려 한다. (이슬람교도, 유태교도, 불교도, 그리고 근본주의자가 아닌 기타의 창조론자들은 자신들의 신앙을 포기하고 성경의 무오류성에 대한 ICR의 맹세문에 서명하지 않으면 ICR의 회원이 될 수 없다.)

ICR이 출판한 인기 있는 소책자 중에 "창조를 믿는 21명의 과학자"가 있는데, 성경이 문자 그대로 정확하다는 것을 믿는 과학자 몇 명의 여러분야에 걸친 박사학위와 석사학위를 나열해 놓았다. ICR이 그 소책자에서 열거한 과학자 중에 생물학 분야의 학위 소지자는 한명도 없었다. 21명 중에서 3명은 교육학 박사학위를 가지고 있었으며 2명은 신학자고 5명은 공학자였다. 나머지는 물리학자, 화학자, 심리언어학자, 식품공학자 등이었다.

몇몇의 창조과학자들은 전문분야의 업적이 별볼일 없었으며, 몇몇은 새빨간 거짓말쟁이였다. 진화론의 과학적 증거를 논하기 위해서는 생물학 분야나 지질학 분야의 학위가 필수적인데, 이런 분야의 학위를 갖고 있다고 주장하는 창조과학자의 학위 자체의 진위여부가 불분명한 경우도 있었으며, 심지어는 보유한 학위가 명백한 가짜로 밝혀진 경우도 많다. CRS의 공동 설립자인 해롤드 슬러셔 "박사"는 캘리포니아 주에 있는 콜럼피아 태평양 대학에서 지구물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CRS는 슬러셔가 박사 명함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결정했는데, 콜럼비아 태평양 대학은 선전용 성냥갑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비공인 통신학교임이 밝혀졌다. CRS의 클리포드 버딕 "박사"도 이와 비슷한 경우이다. 그는 아리조나 자연과학대학에서 지질학 박사학위를 받기 전에 두 번이나 학위과정에서 실패했었다. 아리조나 자연과학대학은 우체국 사서함 주소 밖에 없는 비공인 학위제조공장이었다.

창조론 운동 단체들은 실제로 현장에서 연구를 수행하는 과학들에 대해서도 언급하기를 꺼린다. 지구과학연구소(GRI)는 노아의 홍수에 대한 증거를 지질학적 기록으로부터 찾아내기 위한 목적으로 1957년에 설립됐다. 해당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두명의 창조론자, 에드가 헤어와 리차드 릿랜드가 "화석은 창조론에서 주장하는 것보다 훨씬 오래됐으며 전지구적인 홍수를 입증할 만한 지질학적증거나 고생물학적 증거는 전혀 찾을 수 없다"라는 연구결과를 발표하는 것과 동시에 GRI의 시도는 풍지박산이 되고 말았다.

헤어는 다음과 같이 결론지었다. "우리는 수년에 걸쳐서 모든 지질학적 기록은 노아의 홍수에 연유한다고 배웠었다. 나는 현장을 관찰한 결과 지질학적 증거의 상당히 많은 부분이 노아의 홍수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됐다. 또한 우리는 지구의 나이가 아주 오래 됐다는 증거는 거의 없다시피 하기 때문에 고려할 가치도 없다는 믿음을 주입받아 왔었다. 지난 몇 년 동안 주의 깊게 지질학적 증거를 연구해본 결과, 나는 지구가 아주 오래됐다는 증거들이 더 이상 불분명하지 않고 지구가 둥근 것 만큼 분명한 증거로 느껴진다." 한편, 릿랜드는 모리스의 저서 "창세기 홍수"는 "경험이 없는 사람들은 거의 발견해 내기 힘든 지독한 오류들"을 내포하고 있음을 지적하며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렸다."홍수지질학을 정당화시키려는 더 이상의 노력은 신의 의도에 치욕과 망신을 안겨줄 것이다."

몇 년 후, 루터교회 산하의 인디아나 소재 벨파레이소 대학에서 창조생물학을 가르치던 창조론 생물학자인 칼 크리켈러와 윌리엄 블룸은 창세기의 문자주의적 해석은 어떠한 과학적 증거로도 입증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CRI를 탈퇴했다. 크리켈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말의 계통 내에서의 변화뿐 아니라 특히 파충류와 포유류 사이의 자세한 변천과정과 같은 척주동물의 변화에 대한 증거자료는 나로 하여금 같은 '종' 내에서만 진화가 일어난다는 생각을 포기하게 했다." 크리켈러는 창조론 운동에 대해 다음과 같이 비판했다. "이곳저곳에서 반쪽짜리 진실이 언급되고, 저자의 관점을 정당화하기 위해 전혀 반대되는 문헌의 내용을 문맥을 무시한 채 인용하고, 엉터리 해석을 하는 그런 운동." 크리켈러와 블룸은 유신론적 진화론으로 개종했으며, 후에 진화론을 받아들이는 생물학 교과서를 저술했다.

창조론 운동 단체들이 더 이상 현장에서의 연구를 재정적으로 지원하지도 않고 직접 수행하지도 않는 것은 아마도 이러한 변절자들 때문일 것이다. 이미 풀판된 진화론자들의 연구결과 중에서 적당한 것을 골라 앞 뒤 문맥을 무시한 채 적당한 짜집기로 인용, 자신들의 창조신앙을 정당화하는 것이 창조론 운동 단체들이 사용하는 "유일한 과학적 방법"이다.

정식으로 인가받은 대학에서 정식으로 학위를 수여받은 과학자들 중에도 정신감응, 비행접시, 유령, 털북숭이 거인, 내스호의 괴물 등을 믿는 사람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성경의 무오성과 창조론을 믿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다. 심지어 평판지구학회(FES)에도 과학자로 구성된 대표단이 있다. 주의해야 될 점은 몇몇 과학자가 우연히 이러저러한 믿음을 가지게 됐다고 해서 그 믿음이 타당하다는 증거는 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과학적 타당성은 인기투표나 선거에 의해서가 아니라 증거와 자료에 의해서 결정된다. 25년간에 걸친 노력에도 불구하고 ICR의 창조과학자들은 생물의 변화를 설명하는 진화론 모델에 반박할 만한 결정적 증거는 고사하고 그럴듯한 증거조차 전혀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

모든 창조론자가 과학자인 것은 아니다. 아칸소 재판에서 창조론자 측의 증인이었던 노만 가이슬러는 달라스 신학교에 근무하는 근본주의 신학자였다. 재판 전의 선서과정에서 악마의 존재를 믿느냐는 질문에 그는 믿는다고 대답했으며 그 믿음에 대한 증거로 성경구절을 인용했다. 그리고 나서 질문과 답변이 이어졌다.

 

질문 : 그 믿음에 대한 증거로 성경구절 외에 다른 증거가 있습니까?

가이슬러 : 아, 있죠. 악마에게 확실하게 사로잡힌 12명을 개인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비행접시도 있죠.

질문 : 비행접시오? 왜 비행접시가 악마의 존재와 관계가 있죠?

가이슬러 : 음.. 알다시피 비행접시는 지구에 대한 악마의 주요 공격, 사실상 마지막 공격을 상징하죠.

질문 : 아, 그렇다면, 비행접시가 있는 것을 아신다니까 묻겠는데...비행접시가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아셨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가이슬러 : 리더즈 다이제스트에서 읽었어요.

가이슬러는 그 재판에서 아주 진지한 펴정으로 선서한 후 "비행접시는 현혹하려는 악마의 현현"이라고 증언했다. 또한 가이슬러는 "신은 종교적 개념이 아니므로 아칸소 창조론 밥안에는 학교에서 종교를 가르치려는 의도가 없다."라고 증언했다. 가이슬러의 주장은 다음과 같이 이어진다. "신을 믿지 않고서도 신의 존재를 믿는 것은 가능하다." 악마는 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지만 신을 숭배하지 않으며, 따라서 신은 종교적인 개념이 아니라고 가이슬러는 주장했다. 재판관 오버톤은 "가이슬러의 관념은 일반적인 상식과는 모순된다."라는 다소 정중한 판결을 내렸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