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성술과 통계 (화성효과)


화성효과에 대해서 올린 글을 지우고 다시 올 리는 것은 생각외로 이것이 심각했었기 때문에 제가 대강 알고 있는 상식으로 올려선 안될 것 같아서입니다. 아직까지 모르겠는 것은 화성효과가 정말 적절하게 부정되었는가라는 점입니다. 아마도 아닌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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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성술이 생겨난 원인이 무엇인지는 정확하게는 알 수 없지만 아마도 누군가가 통계를 이용해서 만들어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한번쯤 하게 됩니다. 그러나 실제로 통계로 점성술을 만들었다는 증거는 없습니다. 현대에 와서 점성술이 통계와 관련이 있지 않을까 하고 연구한 사람들중의 가장 대표적인 사람은 미셸 고크랑이라는 프랑스의 통계학자였습니다. 그는 점성술을 통계적으로 분석해서 화성효과라는 것을 만들어 냈는데 결론적으로 말하면 아직 정확하게 부정되지는 않았으며 이것을 얕보았던 CSICOP 내부에서 갈등이 벌어지게 됩니다.

고클랭은 점성술의 통계적인 유의성을 확인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점성술에 대해서는 줄줄 외고 다닐 정도로 잘 알았고 그래서 그의 별명은 노스트라다무스였을 정도였습니다. 그가 소르본 대학에서 수학하던중 히틀러의 점성술사였던 칼 에른스트 크라프트의 초기 연구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크라프트 역시 통계적 방법으로 점성술을 증명하려고 시도했던 사람입니다. 그는 전문분야에서 성공한 수천의 인물(대개는 음악가)의 출생 천궁도를 연구하고, 개인은 각기 '궁'의 성격에 따라 양자리는 엉터리, 쌍둥이 자리는 변덕쟁이, 게자리는 고장을 사랑하는 이 등의 유형으로 분류했습니다. 그러나 통계학의 전문가였던 고크랭은 이것을 분석하고 나서 크라프트가 자기 자신을 속이고 있다고 결론을 내리면서 점성술을 무시하게 되었고 점성술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시각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그가 "떠오르거나 혹은 정점에 도달한 직후의 행성"의 문제는 검토할 즈음 그 증거가 유의성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576명의 의사그룹이 상당수가 토성으로 나타났습니다. 이것은 점성술에서 말하는 것과 일치하는 것이었고, 배우는 목성, 스포츠 선수는 화성이 지배적이었으며 이것은 점성술에서 예측하는 것과 일치했습니다. 이것을 고크랭은 <성좌의 영향-이론과 실제>라는 제목의 책으로 1955년에 출판했는데 그당시는 과학자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고 점성술사들은 오히려 반대를 했습니다. 이것은 한스 에이젠크 교수가 그의 결과를 인정하므로써 약간의지지를 받기는 했습니다.

1975년 <휴머니스트 Humanist>라는 잡지의 9/10호에는 편집자인 뉴욕대학(뉴욕의 버팔로 대학으로 되어 있는데 강건일 박사의 책에는 단지 뉴욕대학으로 되어 있네요. 같은 것인가요?)의 폴 커츠는 18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포함한 182명의 과학자의 서명을 받아서 점성술에 반대하는 선언문을 게재하였습니다. 그리고 고크랑의 주장에 반대하는 그리고 특히 화성효과에 대해서 반대하는 제롬(J.E.Jerome)의 글이 실렸습니다. 그러나 고크랑은 자신의 주장도 실려야 한다고 요구하여 1976년 1/2호에 그의 글을 실었습니다. 그런데 이때가 어느때 쯤이냐 하면 바로 유리겔라가 스푼을 구부리는 공연으로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는 시기였을 뿐만 아니라 에리히 폰 데니켄의 "미래의 기억, (영문판 제목 신들의 전차)"가 세계적인 초 베스트셀러가 되었던 시기였습니다. 그러자 폴 커츠를 비롯하여 아예 "초자연 현상을 주장에 과학적으로 조사하는 위원회 (CSICOP) "라는 긴 이름의 위원회를 만들게 됩니다. 어쨋거나 이와는 별도로 일단 Humanist에는 고크랑의 주장에 대해서 반대하며 젤렌 교수 (Marvin Zelen)교수는 이에대해서 반론을 하게 되는데 화성이 떠오르거나 정점에 있는 각각의 2시간은 전체 4/24이므로 16.7%가 되지만 고크랭은 측정결과 22%가 된다고 주장했던 것인데 문제는 출생시간에 따라서 출생자의 빈도수는 같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젤렌은 하나의 시험을 제안했습니다. 바로 통계적으로 베이스라인을 잡는 것인데 챔피온과 동일한 시간과 장소에서 태어난 사람들을 control로 잡아서 놓고 오리지날 챔피언 중에서 100 명이나 200명 정도를 가지고 비교해 보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방법의 문제점은 22%와 17%를 비교하기엔 너무 적은 수였습니다. 고클랭은 이것을 지적했고, 이것에 대해서 수학적인 증명까지 해주었습니다.

고클랭은 젤넨교수의 잘못된 방법을 수정해서 실험했는데 그가 처음에 사용한 많은 챔피언의 자료중에는 control이 된 자료를 얻기가 쉽지 않아서 프랑스의 챔피언의 자료를 303명밖에 얻지 못했으나 대신 control 그룹을 16,756 운동선수가 아닌 사람의 자료의 점을 찍었습니다. 여기서 control은 예상치인 16.4%가 나왔고 (이점으로 인하여 탄생시간 출생하는 아이의 확률 문제는 해결이 되었습니다.) 챔피언은 21.8%가 나왔습니다. 실망스럽게도 젤렌 교수는 자신이 주장했던 수 100명 혹은 200명 정도가 매우 적은 수였고 그의 디자인이 잘못이었다는 것을 시인하지 않았습니다. (참고로, 그러나 이때 나온 값들의 유의성이 0.02레벨입니다. 이것은 같은 실험을 100번 하면 2번만 빼고는 이런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일반적으로 레벨 0.05 이하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

고크랭의 주장에 대해서 다시 1977년 Humanist 11/12호에서 커츠, 젤렌, 아벨의 3명이 통계에 대해서 반박을 했습니다. 문제는 여기서도 3명은 통계적인 실수를 범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중 하나가 원래의 2088명의 자료를 사용하지 않고 303명의 자료를 가지고 다시 지역별 (파리, 파리외의 프랑스, 벨기에)과 몇 개의 그룹으로 나누고 통계분석하여 파리지역만이 유의미하다고 하였는데 그들은 그룹을 나누게 되면 사람의 숫자가 줄어들기 때문에 일어나는 문제는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아벨은 이에 대해서 고클랑이 오류를 제거할 수 있는 직접적인 방법에 대해서 자세하게 설명한 순서 보내기기까지 했는데도 자료를 모으는 과정에 대해서 의심을 하였습니다.

사실 제대로 분석을 하려면 각각의 소그룹을 16.4%와 비교해야 하지만 아벨을 비롯한 3인은 그렇게 하지 않고 서로 상호간에 비교를 했습니다. 하지만 에릭 타킹톤과 데니스 로린즈는 바로 이렇게 분석을 실시했고 각 그룹간에 심각한 차이는 없다고 보고하게 됩니다. 즉 각 그룹이 22%를 벗어나지 않았다는 것을 분석했습니다. 결국 서로 상이하게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고 파리라고 특별하지 않았고, 고클랭이 잘못을 저질렀다는 증거도 없었습니다.

이것에 대해서 비평이 올라오자 3명은 1977년 논문에서 끈질기게 자기 주장을 반복하는데 그들은 이것은 적당한 방법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고크랭도 마찬가지 방법을 사용했다고 말했습니다. 기술적으로는 맞는 말이지만 실제로는 차이가 있었습니다. 즉 고크랭은 좀더 과학적으로 볼 때 더 합리적이었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작은 그룹에 대해서통계분석을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는 단지 각각의 그룹에서 화성효과가 일어나는 것이 보인다는 것만 확인하기 위해서 실시한 것이었습니다.

그 다음의 심각한 실수는 여성을 제외한 것입니다. 여성을 포함한 상태에서의 결과는 파리는 유의성이 높았고 파리를 제외한 프랑스는 0.06레벨의 유의성이 조금 있었고, 벨기에는 유의성이 없었습니다. 이것을 출판하기전에 여성의 인원이 너무 적다는 이유로 빼 버리게 되는데 이 결과 빠리를 제외한 프랑스가 0.06에서 0.09 significant level이 되면서 유의성이 없다고 되어 버렸고, 전체 샘플도 0.02에서 0.04유의성이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결국 303명에서 294명을 측정한 것입니다.) 이렇게 되 버리면 문제가 생기는 것은 단 한이 화성과 관련이 없어지기만 해도 유의성이 없어지기도 하는 결과를 낳게 됩니다.

이러한 것은 통계학 분석의 원칙을 어기는 것입니다. 통계학 분석은 실제 측정자료를 가지고 하는 것이지 이것을 연구자의 개인 편견이 들어가는 조건에 맞추어서 선택하는 것이 아닙니다.

데니스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2088명에 대한 분석을 하지 않고 잊어 버렸습니다. 데니스는 2088명에 대해서 통계처리를 하여 22%라는 결과가 유의성이 있음을 알아냈습니다.아벨과 커츠에게 편지로 1978년에 알리고 이것을 4년뒤에 SI의 1981-82판에 2088명에 대해서 통계분석하면 유의미한 결과가 나온다는 것을 인정했습니다. 그때 아벨은 자신들이 분석한 것이 의도적으로 숫자를 줄인 것이 아니라 Humanist의 같은 호에 나온 고클랭의 논문에서 나온 것을 그대로 이용했다고 말했습니다. 맞는 말로 들렸습니다.- 고클랭의 논문에 그런 내용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기 전까지는.

사실 놀라운 것은 아벨을 비롯한 3인이 고클랭, 엘리자베스 스콧, 데니스로린즈, 레이 히맨의 끊질긴 주장에도 승복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CSICOP의 위원회는 9명으로 이루어져있습니다. 그런데 그중의 한사람이 바로 데니스 로린즈(Dennis Rawlins)라는 사람이었는데 그는 바로 천문학자였습니다. 그는 3사람의 주장에 대해서 문제가 있다는 것을 지적했습니다. 그런데 1979년 Skeptics Inquirer(SI)에서 3사람의 글은 또 실수가 있었습니다. 데니스 로린스는 이점에 대해서 다른 동료 의원에게 발표하였습니다. 그러나 받아들여지지는 않았습니다. 사실 점성술이 정말로 가치가 있다고 믿는 위원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는 와중에 커츠는 로린즈에게 화성효과를 연구하라고 했으며, 미국의 운동선수를 자료로 해서 확인한 결과 화성효과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이 연구에 대해서 커츠는 1978년 12월의 csicop 주요기자회견에서 이 결과를 발표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커츠가 자신의 의견을 바꾸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다른 위원들에게 도움을 청했지만 결국 별 효과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로린즈의 불평을 무시했습니다. 로린즈는 위원회 미팅에서 그는 강한 저항을 느꼈습니다. 이런 식으로 자신의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로린즈는 불만이 커져갔습니다.

이러한 소동이 있었다면 위원회는 커츠와 아벨 젤렌의 기사를 다시 올리지 말았어야 하는데 SI에 다른 위원인 Ray Hyman (이 사람은 통계학자이며, 간즈펠트 관련 해서 패널로 초청될 정도로 뛰어난 사람임)의 주장을 짓밟으면서 다시 올라왔습니다. Ray Hyman 은 로린즈를지지했었습니다. 그리고 로린즈의 내용은 미국의 운동선수에 대한 내용으로 제한되어 있었습니다. 로린즈는 이점에 대해서 이 잡지의 편집자인 Ken Frazier의 검열이 있었다고 sTarbaby에서 주장했습니다.

로린즈는 정정기사에 대해서 공표를 거부당하고 자신을 위원회에서 제명당한 것에 대해서 좌절을 느끼고 결국 CSICOP에서 사표를 던지게 되고 나와서 Fate 지에 "sTarbaby(제목의 s는 소문자고 T는 대문자입니다. "라는 기사로 이 내용을 폭로하였습니다.

이에 대한 첫 번째 CSICOP의 반응은 다분히 감정적이고 인신공격적인 것으로 로린즈의 오래된 편지를 회람시키는 것으로 그것은 그가 원래부터 말썽을 많이 피우고 결국 그의 진실성과 성품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그리고 두달뒤 공식적인 입장을 취하지 않고 개인의 서명이 들어있는 두 개의 백서를 메일로 보냅니다.

첫째는 "The Status of the Mars Effect"로서 아벨과 커츠와 젤렌의 오래된 주장을 반복하는 것으로 고클랭, 로른스, 스콧, 히맨, 타킹톤등이 반박한 통계적으로 잘못된 내용을 그대로 담고 있었습니다.

또하나는 위원회의 위원중의 한 사람인 Philip Klass 가 쓴 Crybaby 이글은 인신공격적인 내용이 다분할뿐더러 로린즈가 주장한 것에 대해서 기술적인 것에 대해서 거의 무시했습니다.

이것에 대해서 리챠드 캄만 (Richard Kammann) 은 "화성효과에 대한 개인적인 평가"라는 반박의 글을 보냈는데 이것은 3가지를 크게 주장했습니다. 즉 과학적인 올류가 매우크다. 커츠는 통계학을 잘 모르므로 이것에 대해서는 큰 책임이 없다. CSICOP은 로린즈의 주장에 대해서 진지하게 다루지 않았기 때문에 이것에 대해서 책임이 있다는 내용입니다. 이런 글이 알려져서 인지 SI 1981-82년 겨울호 (그당시는 계간지임)에는 검열하지 않은 로린즈의 기사(로린즈의 기사를 수정하지 않고)가 실렸습니다. 그런데 또 다른 문제가 생겼습니다. 바로 그 기사의 앞뒤로 그 기사의 내용을 반박하는 CSICOP의 기사가 실린 것입니다. 그 기사의 하나는 바로 아벨의 주장이 그대로 실리고, 로린즈의 주장을 예전의 방식대로 그대로 비평한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더 나아가 그들은 앞서의 두 백서인 "Crybaby"와 "The Status of the Mars Effect"라는 것을 CSICOP의 공식인증을 한 상태에서 판매했습니다. 또 다른 기사는 바로 아벨과 커츠의 실수에 대한 해명이었는데 그가 2088명을 분석하지 않고 303명을 분석한 것은 실수였고 통계적인 중요성을 잘못알았기 때문이나 이점은 고클랭도 1977년에 이에 대해서 다루었다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Kammann의 글은 위원회 위원들에게 전달이 되었겠지만 그들은 반응이 없었고 커츠와 Klass만이 Kamman에게 편지를 보냈으나 여기서도 그들은 자신이 틀리지 않는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에 캄만은 그의 편지를 로린즈에게도 보내라고 했지만 이것은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Klass의 편지는 워낙 실수가 많기 때문에 더 이상 언급할 가치도 없는 것이었습니다.

Zetetic Scholar라는 잡지에는 화성효과와 CSICOP의 주장에 대해서 Patrick Curry의 리뷰기사가 실렸는데 여기서 그는 로즈를지지했을 뿐 아니라 미국의 운동선수에 대한 실험의 서투른 내용(여기서는 화성효과는 없다고 나왔슴)에 대해서도 언급했습니다. 그러나 위원회와 Zetetic Scholar의 편집자 Marcello Truzzi를 인신공격했습니다.

캄만은 CSICOP에서 아무런 반응이 없자 CSICOP의 잘못된 부분은 모두 생략하고 다시 새로운 글을 써서 보냈습니다. 이글은 "Statistical Numerology in the Skeptics' Response to the Mars Effect"라는 제목이었고 이 내용은 위원회의 몇사람에게만 회람되었습니다. 이 논문은 약간의 결과를 얻어냈습니다.

아벨은 이것에 대해서 이글에 대해서 71페이지의 설명과 2가지 사소한 점(실수였음)만 제외하면 받아들일 없다고 했습니다. Ray Hyman은 이것에 동의했지만 이러한 실수는 과학의 과정에서 사소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아벨로 보임)는 많은 과학자들이 비상식적인 것을 publish하려고 하지만 이것은 피어리뷰와 편잡자의 조정에 의해서 막히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물론 The Humanist와 The Skeptical Inquirer에는 이러한 피어리뷰같은 시스템은 사실상 커츠가 완전히 장악했기 때문에 없다고 봐야 했습니다. Ken Frazier는 캄만의 기사를 좀 짧게하고 부드럽게 하여서 SI에 실어줄 수는 있지만 아무도 이러한 오래된 문제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뒤에 계속 캄만의 글에 대한 반응과 반대가 있었지만 소문에 의하면 아벨이 이에 대해서 수긍을하고 잘못된 점을 시인하는 글을 쓴다는 것이 있었지만 이것은 끝내 실현되지는 않았습니다. 아벨은 Frazier처럼 은 이것이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을 것이라고 했고 초안에의하면 고클랭을 빈정거리고 벨기에의 반복실험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을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리고 또한 결국 아벨은 그는 매우 바빠다고 핑개를 대었습니다. .

이와 동시에 1982년 Psychology Today에서는 아벨은 고크랭의 화성효과에 대해서 리뷰를했고 그것을 부정하는 주장을 했습니다.여기서 그는 화성효과라는 것이 고클랭의 자료에서만 확인이 된다고 사람을 혼동시켰습니다. 벨기에의 팀에서 확인한 결과를 빼먹었던 것입니다. 또한 곧이어진 1982년 8월 30일 Newsweek에서 아벨은 "고크랭은 속임수를 쓰지 않았다는 증거를 제시할 방법이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런 말은 사실은 아벨이 증명해야 하는 것이지 고크랭이 증명해야될 사항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말입니다.

결국 5년동안의 일을 평가해 볼 때 CSICOP은 화성효과에 대해서 아벨의 주장을 반대하는 어떠한 반론에 대해서도 검열을 실시했고 적절하게 다루어주지 않았고 유일한 예외가 그나마 로린즈의 기사를 실어준 것인데 그것도 말도 않되는 반대주장을 2개를 같이실어주면서 로린즈를 농락한 것입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해야 할말은 그럼 화성효과는 과연 정말 있는가라는 질문인데 그전에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화성효과라는 것은 별자리에 대한 것이지만 실제로 화성이 일으키는 것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점을 믿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화성이 지구에 미치는 영향은 아주 가까운 달이 미치는 영향보다 훨씬 적을 것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통계적인 결과만 가지고 본다면 고클랭의 주장을 제외하고 벨기에에서 확인한 결과로는 유의성이 있었고, 로린즈박사의 미국 운동선수에 대한 결과로는 없었습니다.(그러나 이 실험에 대해서는 아직 충분한 리뷰가 없습니다.)그러므로 완전히 있다고도 말하기 어렵고 없다고도 말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닙니다. 다만 조금 있는 것 같다라고 말해야 할 듯합니다.

그리고 한가지 추가한다면 점성술에는 이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주장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마치 거의 절대적인 사실인 것처럼 주장합니다. 하지만 그런 내용의 점성술은 거의 대부분이 사기라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고클랭 자신도 점성술에 대해서 반대하고 있습니다. 고클랭의 주장은 전통적인 점성술과는 다른 내용이었기 때문에 점성술사들은 초기에 고클랭에 대해서 심하게 비판했습니다. 하지만 고클랭은 자신의 연구결과로 전통적인 점성술이 거짓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할말은 위의 사건은 20년정도 된 사건이면 그동안에 잘못된 과학과 사이비들에 대해서 CSICOP의 저자들은 많은 노력을 했고 그점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됩니다. 모두 CSICOP의 커츠와 아벨같이 행동하지는 않았을 것이고 또한 이 문제가 커츠자신에게는 전공분야가 아니었으며 CSICOP의 모든 사람이 찬성하고 있었던 것도 아니라 Ray Hyman같은 사람은 반대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비록 이와 같은 사건이 있었다고 해도 CSICOP의 영웅적인 발자취는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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