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FK"의 음모론은 어느정도 신빙성이 있을까?

(이글을 딴지 일보에 실을까 하다가, 편집장이 바뀐 관계로 이젠 딴지일보에 별 관심이 가지 않아서 개인 홈페이지에 올립니다. 그동안 저를 도와준 딴지일보의 전 편집장님에게 고마움을 표시합니다. 제글은 사실 딴지에 안맞죠. 그리고 그림의 출처를 밝히지 않았는데, 이점은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올리버 스톤의 JFK를 봤을 것입니다. 그리고는 그 엄청난 음모에 충격을 받았을 것이고, 그것을 밝혀낸 올리버 스톤이라는 감독에 대해서 존경심 마져 들었을 것입니다. 주인공인 캐빈 코스트너도 역시 정의의 인물로 생각될 것입니다.

사실 저는 개인적으로 미스테리나 음모론에 대해서 밝히는 것이 취미이긴 하지만 JFK는 별로 관심사는 아니었습니다. 다만 제가 딴지일보에 JFK를 만든 올리버스톤을 비난했던 것에 대한 반발이 있기 때문에 JFK에 대해서 잠시만 다루겠습니다.

먼저, 이 글은 역사적 사실로서 JFK의 암살의 배후에 대해서는 다루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사실 JFK의 배후는 CIA에서부터 공상주의자, 미국 극우파등등 같다 붙이면 누구나 될 수 있고, 사실, 배후가 있었을 가능성도 있고 수사과정이나, 자료가 내손에 없는 이상 함부로 말할 사항은 아니고 단지 추측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단지, JFK의 암살이 오스왈드의 단독범행인가 아닌가 하는 점과, 올리버 스톤의 영화 JFK에 한정되서 다룰 것입니다.

올리버 스톤에 대한 회의주의자들의 태도에 대해서는 널리 알려졌기 때문에 혹시 국내에 이 내용을 번역한 사람이 있지 않나 살펴 봤는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회의주의자들의 사이트의 내용을 번역해서 정리한 사이트가 있기 때문에 소개하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포켓속의 미국이라는 사이트인데, 재프루더 필름의 사진과 여러 가지 정보가 실려 있습니다. 그리고 사실상, 모든 JFK의 암살 사건에 대해서 skeptics의 입장에서 서술한 사이트인 The Kennedy Assassination로 링크시켜 놓았습니다. 그리고 그 사이트의 내용을 상당히 정리해 놓았기 때문에 제가 드리고 싶은 말은 우선은 그 사이트에 가서 글을 읽으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글을 다 읽기 귀찮아 하는 사람들이나, 링크를 찾아가면서 글을 읽기 귀찮아 하는 사람, 그리고 약간의 추가 정보를 위해서 제 나름대로 정리해보겠습니다. 하지만 읽기 전에 미리 지적할 말은 JFK에 대한 글은 결코 짧은 정리로 끝날 사항이 아니며 음모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수 많은 주장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모두 다룰 수는 없고, 여기는 간단한 몇가지만 다룰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제 글도 음모론을 완전히 반박했다고 하기 보다는 이젠 이러한 시각도 있다는 선에서 마무리 하고 싶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JFK의 음모론에 대해서 깊이 있게 조사해 보지도 않았을 것이고, TV에서 나오는 이야기를 받아들였을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물어봤더니 가장 궁금하다는 것이 마술탄환이더군요. 그러므로 마술 탄환을 먼저 짚고 넘어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마술 탄환 이론은 한 발의 총알로는 케네디 대통령과 코넬리 주지사를 같이 맞출 수 없다는 이론입니다. 아마 JFK 영화속에서 가장 설득력 있게 부각되는 장면이라고 생각됩니다. 영화를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잠시 설명하자면, 오스왈드는 3발을 케네디에게 발사했는데, 이중 첫 발은 빗나가고, 2번째 총알이 케네디의 목을 관통하고 코넬리의 폐를 관통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3번째 총알이 케네디의 머리를 맞추고 이 총상으로 케네디가 사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케네디를 맞춘 첫 번째 총알(오스왈드가 쏜 2번째 총알)은 치명상이 아니었기 때문에 2번째 총알을 피하면 충분히 살 수도 있었지만 불행히도 JFK는 방탄복을 입고 있었기 때문에 고개를 숙이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죽음을 당했다고 합니다.

마술 탄환은 케네디가 맞은 두 번째 총알에 대한 것입니다. 음모론자들과 회의주의자들은 이 첫 번째 탄환이 지나간 자리가 한발의 총탄으로 설명이 되는가 안되는가를 가지고 충돌합니다.

먼저 음모론자들의 주장을 살펴보겠습니다.

영화 JFK에서는 케빈코스트너가 법정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위의 내용을 그림으로 그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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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한 발의 총알이 위의 그림처럼 움직여야 하는데, 물리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정부측의 주장은 믿을 수 없다는 것이 마술탄환 이론의 요점인 것입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요?

 

재프루더 필름과 데일 마이어스의 분석

먼저 마술 탄환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몇가지 가정을 하고 있습니다. 케네디와 코넬리가 앉은 위치가 수평이며, 코넬리는 케네디의 바로 앞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케네디가 타고 있던 리무진을 살펴보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설계사가, 대통령 퍼레이드를 하는 대통령을 돋보이는 장치를 만들어 놓지 않았겠습니까? 실제로 케네디가 앉은 위치는 코넬리가 앉은 위치보다 높았습니다. 그것은 사진으로 자세히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여러 사람들이 찍은 사진으로 코넬리와 케네디의 위치는 바로 정면이 아니었습니다.

이쯤이면 여러분은 이런 생각이 들 것입니다. 말로만 하지 말고, 누군가 정확하게 필름을 보고 자료를 만들어서 자료를 제공할 그런 사람이 없을까? 당연히 그런 사람이 존재합니다.

JFK 암살의 가장 극적인 사실은 그 내용이 8mm 비디오 카메라에 찍혔다는 것입니다. 그 필림은 자프루더 필름이고, 아마 역사상 가장 유명한 8mm 비디오 필름일 것입니다. 자프루더는 필름을 Life 지에 15만 달러에 판매되었다고 합니다.  

이 재프루더 필름을 이용해서 최소한 두 번 3D로 재현하려는 시도를 했는데, 그중의 한 번이 FAA(Failure Analysis Associates)라는 회사에서 실시한 것이고, 또 한 번은 Dale Myers라는 애니메이터가 컴퓨터 그래픽을 이용해서 재프루더 필름을 그대로 묘사한 것입니다. 인터넷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은 데일 마이어스의 작업 결과입니다. Dale Myers 의홈페이지를 가보면 애니메이션 결과물을 DVD에 담아서 판매할 계획인 것 같은데, 불행히도, 이글을 쓰는 현재 order 란이 없는 것을 보아하니 아직 판매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는 주요 내용을 이미 홈페이지에 올려 놓았기 때문에 자료를 살펴보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그 홈페이지의 내용을 하나 하나 정리해 보겠습니다.

우선 앞서 말했지만, 오스왈드는 3발의 총을 쏜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가 체포된 위치에서 3발의 탄피가 발견되었으며, 총소리도 3번 들었다는 사람들이 가장 많습니다. 그리고 자프루더 필름에서 케네디와 코넬리는 총소리에 3번 반응합니다. 이에 대해서 논란의 여지가 많기는 한데 우선 그 내용은 다음에 다시 자세히 다루겠고 일단 데일 마이어스의 분석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위의 재프루더 필림을 그대로 컴퓨터 그래픽으로 처리한 결과는 2번째 총알은 다음과 같은 경로로 두 사람을 맞추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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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 그림은 한발의 총알에 맞도록 두 사람을 억지로 배치시킨 것이 아니라, 두 사람을 배치 시키고 나서 한발의 총알과 맞추어 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데일 마이어스는 케네디의 목을 관통한 첫 번째 총알이 코넬리도 맞추었다는 정부측의 주장이 맞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이번엔 총알이 날아온 위치를 찾아보겠습니다. 위의 모델링을 통해서 얻은 결과를 통해서 컴퓨터의 오차범위를 넣어서 다시 그림을 그려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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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해서 정확하게 오스왈드가 있던 위치와 일치하는 것입니다.

윗 그림에서는 불행히도 코넬리의 손목과 다리에 맞은 부분은 확인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것을 확인할 수 있는 그래픽은 앞서 말한 FAA라는 회사에서 만든 모델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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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저격수의 위치에서 본 그림입니다. 아래 그림은 앞서 컴퓨터 그래픽을 한 데일 마이어스의 그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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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이쯤이면 거의 완벽하게 설명이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참고로 세 번째 탄환은 불행히도 두개골이 깨졌기 때문에 정확한 탄도 연구가 매우 어렵다는 한계가 있으나 이것도 역시 첫 번째 위치로도 충분히 설명이 된다.

 

풀이 우거진 언덕에서 총을 쏘았다는 주장에 대해서

이제, 케네디 암살 사건의 또 하나의 음모론 혹은 가정의 하나인 풀이 우거진 언덕에서 총을 쏘았다는 이론 (grassy knoll 이론이라고 불린다.)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사실 이것은 마술 탄환 이론의 변종인데, 이것이 널리 유명한 것은 영국의 법의학자가 음향학적인 증거를 이용해서 케네디를 향해서 풀이 우거진 언덕에서 총알이 발사된 증거가 96.3% 정도 된다고 발표했기 때문입니다.

케네디가 맞은 첫 번째 탄환은 탄도가 명확하기 때문에 당연히 grassy knoll에서 발사될 수 없는 것이지만 두 번째 케네디를 사망케 한 탄환이 바로 그곳에서 발사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바로 위의 데일 마이어스의 분석에 의하면 사실일 가능성이 적습니다. 그림을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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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노란 동그라미가 쳐있는 곳이 유명한 풀이 우거진 언덕인데 모델링 결과 그곳에서는 총알이 발사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혹시 그곳에서 총알이 발사되었을 가능성이 있을 수는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총알은 케네디를 맞추는데는 실패했다는 말이죠. 만약에 다른 사람들이 암살자가 존재했다면, 명사수들일텐데 오스왈드는 맞추고 미지의 저격수는 못맞췄다? 여러분은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마술 탄환에 얽힌 이야기 몇가지 더.

마술탄환에 대한 문제는 대충 앞서 말한 내용으로 충분하지만, 좀더 자세히 알고 싶으신 분은 아래글을 마져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마술 탄환은 하원조사 위원회 증거 번호 399이기 때문에 CE 399 라고 불립니다. 이 총알은 달라스의 파클랜드 병원의 엘리베이타옆의 들것에서 발견 되었습니다. 병원에서 기술자로 일하는 다렐 톰린슨(Darrell Tominson)은 케네디 일행이 병원에 왔을 때 엘리베이타 옆에 세워 두었던 들 것에서 이 총알을 발견하고는 비밀 경호원 중 한명인 리차드 존센에게 넘겨 주었습니다.

이 총알은 또 다른 별명이 있는데, 온전한 총알(Pristine Bullet)입니다. 그것은 이 총알이 여러곳을 지나서 상처를 입혔으나 자신은 온전한 상태로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이 총알의 윗 부분에는 약간 구겨진 자국이 있기 때문에 온전하다고 보기는 어려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만약 이 총알이 코넬리의 손목을 맞춘 총알이고 케네디는 다른 저격수가 쏜 총에 맞은 것이라는 주장이 맞다면, 이 총알은 이렇게 온전할 수가 없습니다. 실제 총알의 속도로 계산할 때 총알은 완전히 뭉겨져야 한다는 것이죠. 하지만 이렇게 총알이 온전할 수 있었던 것은 이 총알이 케네디와 코넬리를 뚫고 들어왔기 때문에 속도가 약 절반으로 줄었기 때문입니다.

일부 사람들은 이 총알이 실제 총알이 아니라, 음모를 꾸민 사람들이 일부러 가져다 놓은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주장에는 몇가지 문제점이 있습니다.

우선 케네디를 쏜 총알이 코넬리를 관통할 것까지 예측하지 않았다면, 보통은 뭉개진 형태의 총알을 가져다 놓는 것이 더 합리적이겠죠. 간단히 말해서, 닭이나, 개, 돼지 같은 동물 쏘고 잘 닦은 다음에 가져도 놓는 것이 가장 쉬울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한다면, 총알은 뭉개져 있을 것이다. 미리 범행을 준비한 사람일지라도, 케네디를 관통한 총알이 코넬리 주지사를 관통할 것으로 예측하지는 못했을 것이니까요.

그리고 총알이 발견된 것은 들 것 옆이었는데, 총알을 이렇게 손실되기 쉬운 곳에 놓아두지는 않았을 것이다.

 

세발은 언제 발사되었고, 총을 쏠 시간이 충분했는가?

이제 이야기를 다시 앞으로 되돌릴 필요가 있을 것이다. 앞에서 이미 3발의 총알이 발사되었고, 첫발이 빗나갔다고 지적했다. 사실 이 빗나간 첫 발은 한 시민에게 파편이 튀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 이야기는 접어두고, 우선 시간이 충분한가부터 알아보겠습니다.

1964년 FBI의 총기 검사에서 오스왈드의 총으로는 최소한 재장전에 2.25초에서 2.3초가 필요하다고 결론을 내렸으며, 첫 발이 이미 장전되었기 때문에 실제로 필요한 시간은 4.5초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결과는 이미 수정되었는데, CBS에서 다큐멘타리를 만들면서 재 실험을 했는데, 11명의 자원자 모두가 오스왈드가 사용한 동일한 종류의 총을 미리 다루어 보지 않았어도 3발의 총을 쏘는데 4.1 초에서 6초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이로서 실제로 훈련을 조금만 해도 더 빠르게 총을 쏠 수 있다는 결론이 내려졌습니다.

재프루더의 필름은 1초에 18.3 프래임이 움직이므로, 총을 발사한 시간을 예측할 수 있는데, 필름 상에서 마지막 발사한 시간은 정확하게 필름 313 프레임이었습니다. 문제는 첫 번째 사격이 언제였는가를 결정하는 것이었는데, 이것은 여러 가지 이유로 판단하기 어려웠습니다. 물론 앞서 말한 애니매이션을 이용한 판단에서는 157번 프레임에서 케네디와 코넬리가 동시에 옆을 바라보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초기 하원의 조사 위원회의 의견은 조금 달랐습니다. 원래 총을 쏠 때 첫발이 가장 정확하기 때문에 목을 관통한 총알을 첫발로 생각하는 의견을 선호했던 것입니다. 이 의견을 선호하는 것은 그외 몇 가지 다른 이유가 있었다. 우선 대통령의 차가 교과서 저장 건물의 앞에 나타났을 때, 사격자는 자동차가 우회하는 경우 나뭇가지 등으로 가려지기 때문에 빨리 결정을 지어야 했을 것입니다. 필름을 확인한 결과 167에서 210 프레임까지는 2.3 초는 총을 쏠 수 없는 위치이며 186 프레임도 잠시 총을 쏠 수 없는 위치입니다. 뿐만 아니라 필름 상에서 고속도로 표지판 때문에 200에서 224 프레임에서는 정확하게 대통령을 정확하게 판단하기 어려웠습니다. 분명한 것은 이 표지판을 지나가기 전에는 총알에 맞았다는 아무런 표시가 없었으나 225 프레임에서는 분명히 총을 맞은 반응이 보였습니다. 즉 이 말은 고속도로 표지판에 가려졌을 때 총에 맞은 것이라는 것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즉,  그가 총에 맞은 반응으로 오른 팔을 들어올리는 225 프레임 이전에 총을 맞았으며, 210 프레임 이전에는 총을 맞지 않았다는 것이다.

만약에 이것이 첫발이라면 (313-224)/18.3=4.86 이므로 오스왈드는 최소한 4.86초에서 최대한 5.6초의 시간이 주어질 뿐이었습니다. 이 시간내에 움직이는 목표에 3발을 발사한다는 것은 어렵다고 생각하는 음모론자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이 시간내에서도 3발의 발사가 충분히 가능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첫발이 케네디를 맞추었다는 가정 자체가 틀린 것입니다. 목격자와 재프루더 필름을 같이 종합할 때, 첫 발은 케네디의 차가 166프레임 이후에 나무 사이로 가려지기 이전에 발사된 것입니다. 벨 프레이저와 하워드 브레난, 바바라 로우랜드 등등 많은 목격자들이 대충, 큰 길에서 엘름 가로 들어서는 순간에 총소리를 들었다고 증언했습니다.

그리고 그 뒤에 경호차량에 탑승했던 글렌 베넷은 더욱 정확한 기록을 사건 5시간 후에 남겼습니다. 그는 "첫발은 마치 폭죽 같은 소리였으나, 나는 이 소리로 인하여 대통령쪽을 바라보았다. 두 번째 폭죽 소리가 들렸고, 대통령의 목아래 4인치 되는 곳에 총알을 맞은 것을 보았다.(실제 위치와는 약간 다름)." 베넷은 3번째 총알에 대해서 "대통령의 머리 뒷쪽 윗부분에 맞았다"라고 썼다. 이 당시는 총알이 앞에서 발사되었는지 뒤에서 발사되었는지 아직 알려지지 않았을 때라는 것을 감안하면 그의 기억을 매우 신뢰할 만하다고 보입니다.

하지만 위원회에서는 이들의 증언만을 믿은 것은 아니었는데, 그 이유는 많은 사람들은 또한 2번째 총알이 빗나간 것이라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위윈회는 이에 대해서 결론을 유보하고 있었다.

그러나 앞서 지적했듯이, 총알은 첫발이 빗나간 것입니다. 이를 알려주는 또 하나의 증거가 있는데, 재프루더 필름의 160 프레임에서 한 빨간 스커트와 흰색 상의를 입은 여성이 대통령의 차를 따라서 뛰어가다가, 엘름가로 들어서면서 오른쪽으로 돌아서 1.5초후가 지난 187 프레임에서 그녀는 완전히 멈춰섰고, 그 결과 대통령을 엄호하는 모터 사이클과 완전히 떨어지게 되었으며, 그녀는 뒤 돌아서 교과서 저장건물을 응시했던 것이다. 그녀의 이름은 로즈마리 윌리스였다. 일부는 그 여자의 반응이 아버지인 필 윌리스가 약 3미터 정도 떨어져 있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그녀에게 왜 멈추었냐고 질문했을 때, 총소리를 들었기 때문에 멈추어 섰다고 말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녀가 멈추어 선 직후에 제네디는 손을 흔드는 것을 멈추고 자신의 오른쪽 관중들을 바라봤고, 다시 재클린을 쳐다봤습니다.

재프루더 필름을 종합하면, 프레임 162에서부터 코넬리 주지사의 머리가 약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돌아갔으며, 소녀였던 윌리스는 달리면서 오른쪽으로 돌면서 멈추시 시작했고, 대통령은 손을 흔드는 것을 멈췄던 것입니다.

조금은 특이한 간접적인 증거도 하나 있는데, 총소리가 나면서 카메라가 흔들렸기 때문에 화면이 갑자기 흐려진 시기가 바로 총알이 발사된 시각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노벨상 수상자인 루이스 알바레즈가 지적한 것이었는데, 불행히도 재프루더 필름은 카메라를 완전히 고정하고 찍은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좋은 증거가 되지는 못할 것입니다만, 그래도 조사는 했는데, 하원위원회는 필름 상에서 4번의 움직임이 있었으며, 이중의 한 번이 프레임  158-160 이었고, 한 번은 313-314였다.

재프루더 필음을 이미지를 좀더 개선하여 확인하고, 목격자의 증언을 바탕으로 오스왈드가 프레임 160번 근처, 즉 엘름가로 들어서면서 나뭇가지 사이로 사라지기 직전에 첫 발을 발사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정도의 시간이면 훈련을 전혀 받지 않아도 케네디를 향해서 3발을 발사하는데 충분한 것입니다.

 

중성자 방사화 분석(NAA)

3발의 총알이 발사되고 그 중에 2발이 케네디를 맞추었고, 그중 한 발이 케네디와 코넬리를 동시에 맞추었다는 것은 이미 앞서 설명했습니다. 그러면 이를 뒷받침하는 또 다른 증거는 없을까요? 사실 또 다른 증거가 있습니다.

그 증거는 중성자 방사화 분석(NAA)라는 것을 이용하여 총알을 분석한 결과입니다. '중성자 방사화분석'이라는 것은 간단히 설명하면, 일부 원소가 포함된 검체에 중성자를 쏘면 감마선이 나오는 원리를 이용한 것으로 모든 원소가 감마선을 발생하지는 않으나 감마선이 발생하는 경우에는 스펙트럼을 이용해서 비파괴적으로 검사를 실시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검사법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한국 원자력 연구소의 홈페이지를 참조하기 바랍니다.

빗나간 총알은 발견되지 않았지만, 나머지 2발은 발견되었고, 그외 총알의 파편이 여러곳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요약하면 다음 그림과 같습니다.

Table 1. Bullets and fragments received by the FBI.

증거 번호

설명

중량(mg)

CE 399 (Q1)

들 것에서 나온 탄환 (lead core plus jacket)- 일명 마술탄환

10,277

CE 567 (Q2)

좌석 쿠션에서 나온 탄환 조각 (lead core plus brass jacket) -케네디의 머리를 맞춘 탄환

2,890

CE 569 (Q3)

앞좌석에서 나온 탄환 조각 (jacket)

1,361

CE 843 (Q4,5)

케네디의 머리에서 나온 납 조각[2]

107; 9.7

CE 842 (Q9)

코넬리 주지사의 팔에서 나온 3개의 납조각

32

CE 840 (Q14)

뒷좌석에서 나온 3개의 납조각

58, 45, 45

CE 841 (Q15)

앞 유리창의 안쪽에서 긁어낸 조각

적혀 있지 않음

그림. Original locations of the five basic fragments.

 

이들 조각은 앞서 설명한 것이 맞다면 케네디의 머리를 맞춘 Q2는 좌석에 흩뿌려진 것과 동일할 것이며, 마술탄환으로 명명된 Q1은 코넬리의 손목에서 발견된 것과 동일해야 할 것입니다.

음모론자들은 탄환을 중성자 방사화 분석(NAA 분석)해 줄 것을 요구했고, 전문가인 Guinn이 분석한다고 했을 때 환호했었습니다. 당연히 자신들의 주장을 입증해 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과가 나오자 그들은 실망했습니다.

일반인들은 같은 회사의 총알이고 차이가 있기는 하더라도  설마 이 두 개의 탄환을 NAA로 분석해서 구분할 수 있을까 의심하실 것입니다.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같은 회사의 총알이고 두 개의 총알은 거의 연속적으로 제조된 것인데, 성분이 차이가 나면 얼마나 나겠습니까?

하지만 분석 결과는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우선 탄환에서 발견된 놀라운 사실은, 사용된 탄환이 매우 특이한 성분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즉 안티몬과 은이 포함되었는데, 제조시에 일정한 양이 들어간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어느 박스를 뜯어도 서로 다 다른 결과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두 탄환은 연속으로 발사되었고 아마도 같은 박스에서 뜯어서 장전했음에도 불구하고 서로 탄환의 성분이 달랐다는 것입니다. 이 놀라운 분석 결과는 http://karws.gso.uri.edu/JFK/Scientific_topics/NAA/NAA_and_assassination_II/Guinns_NAA.html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간단히 정리하면, 마술탄환과 코넬리의 손목에서 발견된 조각과 성분이 일치했으며, 나머지 탄환이 서로 일치했으며. 그리고 세 번째 탄환의 흔적은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림 설명 : 사실 Guinn이 실험하기 이전에 FBI가 먼저 조사했습니다만 결과를 발표하지 않았습니다. 후에 하원의 조사위원회의 의뢰를 받아서 Guinn이 조사했습니다.

 

이 결과가 나오자 처음에는 오스왈드 단독범행의 결정적인 증거로 인식되었지만, 후에 탄환의 부분 부분마다 안티몬의 성분비가 다르기 때문에 약간 문제가 있다고 음모론자들이 주장했고, 증거로서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이론적으로는 그 말이 사실이나, 검체를 채취한 위치등을 고려할 때, 만약 다른 총알이라면 이렇게 일치된 결과를 얻을 수 없다는 것이 전문가의 입장입니다. 그러므로 지금은 위의 증거가 오스왈드 단독범행의 증거라고 생각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http://karws.gso.uri.edu/JFK/Scientific_topics/NAA/NAA_and_assassination_II/Conclusions.html

 을 참조하시길 바랍니다.

 

코넬리의 느린 반응

이제 마지막으로 골치거리의 하나였던, 왜 코넬리는 같은 총알에 대해서 반응이 느렸었는가에 대한 의학적인 증거들을 알아보겠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코넬리 주지사가 말한 내용, 즉 첫 번째 총알이 케네디를 관통했다는 증언과 케네디를 관통한 총알에 대해서 케네디는 즉각적인 반응을 보였으나, 코넬리는 이보다 조금 늦게 반응을 했다는 이유로 인하여 하나의 총알이 아니라, 2개의 탄환이 거의 동시에 발사된 것으로 생각합니다. 물론 이것은 앞서 말한 많은 내용과 일치하지 않지만, 음모론자들이 줄기차게 주장하는 것중의 하나입니다. 하지만 자세히 살며보면 이것 역시 충분히 과학적으로 설명이 되는 내용입니다.

우선 코넬리는 첫발이 발사된 후 오른쪽으로 돌아볼 때 케네디를 완전히 볼 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케네디가 첫 번 총알에 맞았다고 증언한 것은 아내의 증언에 근거를 두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내가 말한 첫 번째 총소리는 실제로는 두 번째 총소리였을 것입니다. 이 점과 기타 조사 결과를 근거로 후에 포스너가 인터뷰를 실시했을 때, 그는 앞서 증언했을 때와는 달리, 자신은 항상 열려 있으며, 케네디와 자신이 같은 총알을 맞았다는 증거를 받아들이는 것이 더 일관성이 있다는 것을 인정했습니다.

하지만 아직 설명하지 않은 것은 케네디와 코넬리의 반응시간이 왜 차이가 났는가라는 점입니다. 우선 케네디는 총에 맞은 즉시 두손으로 목을 쥐는 듯한 움직임을 보입니다. 한 때, 이 행동이 Thorburn response 라는 주장이 있었습니다. 사실, 이 주장은 포스너가 자신의 책에 실었다가 의사들의 호된 비판을 받았죠. 이 주장 때문에 그 책의 신뢰성이 떨어진다고 말이 많았었습니다. 의사들의 주장은 Thorburn response가 아니라, 총을 맞을 때 받은 충격이 가까운 운동 신경을 건드렸다는 것입니다. 이 운동신경은 매우 빠르게 신호를 전달하고 그 결과로 팔이 움직이게 된 것입니다. 의사들의 말에 따르면, 총에 맞은 후 팔이 움직이는데 걸리는 시간은 일반적으로는 0.1 초면 충분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오른쪽 팔이 왼쪽 팔보다 약간 더 빠르게 움직인 것으로 봐서 총알은 목의 오른쪽을 관통한 것과 잘 맞아 떨어집니다. 좀더 정확한 시간계산은 http://mcadams.posc.mu.edu/jfkhit.htm을 참고하기 바랍니다.

그러나, 코넬리는 폐를 관통했기 때문에 반응은 이보다 훨씬 느리다는 것입니다. 많은 음모론자들은 코넬리의 움직임이 235-236 프레임에 와서야 명확해진다고 하면서 코넬리가 조금 늦게 총에 맞았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아마 인체의 반응만을 본다면 그 말이 사실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재프루더 필름에는 그가 더 일찍 총알에 맞은 흔적이 나타납니다. 재프루더 필름의 224프레임에서 코넬리의 상의의 아랫깃(lapel) 부분이 부풀어 올랐다가 가라앉는 것이 발견되었는데, FAA 회사의 Jeff Lotz는 이것이야 말로 코넬리가 총격을 당한 시점을 정확하게 나타낸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외에도 마이클 웨스트는 주지사의 모자가 프레임 227에서 갑자기 올라갔다가 229에서 정상으로 내려오기 시작하며, 이것이 물리적 충격에 따른 신경의 반응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이와는 달리 직접적인 증거는 아니지만 프레임 235-236에서 코넬리의 입이 벌어지고 볼이 부풀어 오르기 시작하는데, 이것에 대해서 코넬리를 치료했던 챨스 그레고리는 총알이 폐를 지나가면서 후두덮개가 강제적으로 열리게 되어 공기가 입으로 빠져나온 것이며, 이것은 총에 맞은 후 약 0.5초 정도 후에 일어나는 반응이라고 말했습니다. 필름 상으로는 226 프레임에 해당하며, 그는 재프루더 필름을 보지 않은 상태에서 이에 대해서 말했다는 것과 0.5초라는 시간이 완전히 정확하지 않은 것을 감안하면, 실제 총에 맞은 프레임인 223-224와 거의 일치합니다.  

마술탄환의 궤적

이제 마지막으로 마술 탄환이 처음부터 어떻게 움직였는지 정리해 보겠습니다. 총알은 오스왈드의 총에서 600m/sec의 속도로 발사되었고, 케네디의 목에 도달했을 때의 속도는 아마도 510-540m/sec 정도였을 것입니다. 목을 관통하면서 속도가 약 30-60m/sec는 줄어들었을 것이며, 코넬리 주지사를 관통할 때의 속도는 450m/sec 정도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몸을 관통하여 손목을 맞춰, 뼈를 골절시켰을 때 속도는 아마도 270m/sec 정도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다시 허벅지에 닿았을 때는 120m/sec에 지나지 않아서 큰 상처를 남기지 않았을 것이다. 또 한가지 지적할 것은 케네디를 관통한 총알은 약간 회전을 했으며, 그로 인하여 코넬리를 관통할 때는 옆으로 누운 형태였기 때문에 상처를 길 게 남겼다.

마술탄환은 완전한 탄환이라고 불리는 것과는 달리 일부 부분이 떨어져 나갔고, 특히 코넬리의 손목에 파편을 남겼습니다. 그리고 이 파편과 마술탄환의 성분 분석결과 서로 일치한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마술탄환 관련 그외의 의문점들

등뒤쪽의 상처의 정확한 위치는 어디인가?

이 총알이 남기고 간 상처도 역시 의문이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마술탄환을 주장하는 음모론자들의 탄도는 항상 총알은 등에서 아래쪽으로 들어갔다고 다시 위로 향해서 나옵니다. 즉 음모론자들은 총알이 들어간 위치를 일반적으로 매우 낮게 책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실 검시보고서의 그림을 그대로 인용한 것인데 검시보고서의 그림에는 실제로 등의 상처가 상당히 내려가 있습니다. 하지만 검시 보고서에서는 상처의 위치를 정확하게 "귀 뒤의 융기된 뼈(mastoid process) 아래 14cm 지점"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위치는 검시보고서의 그림과는 맞지 않지만 단일 총알 이론과는 잘 맞습니다.

하지만 음모론자들은 검시보고서의 그림이 더 중요하다고 주장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후에 검시보고서의 그림을 그린 쏜톤 보스웰(Thornton Boswell)에게 문의한 결과 그는 검시보고서의 그림을 그릴 때 정확한 위치에 맞도록 그린 것은 아니며, 실제 위치를 표시해 주었습니다. 물론 음모론자들은 실망했을 것입니다.

 

 

영화 JFK 

이제 영화로 들어가서 장면 장면의 조작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본인이 지난 글에서 JFK가 사이비 역사학이고 올리버 스톤이 멍청이라고 한 것을 단순히 음모론을 영화로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것은 전혀 그렇지 않으며, 본인이 그를 비난하는 이유는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신뢰하지 말아야 할 사람을 신뢰하여, 엉터리 역사를 스스로 창조했기 때문입니다.

올리버 스톤의 JFK를 블랙 코메디나, 혹은 오락용 영화라고 생각했던 독자에게는 사실 본인은 아무런 할 말 없습니다. 그런 영화 맞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약 이 영화를 거의 사실에 기초해서 음모론을 제시한 영화라고 생각했다면, 불행히도 이 영화속에 나오는 너무나 많은 장면이 거짓이라는 것에 대해서 충격을 받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음모론을 주장하지만, 그것은 실제 사실을 근거로 음모론을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음모론은 좀더 많은 사실을 알아내는데 도움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올리버 스톤의 음모론은 자신의 음모론을 위해서 실제 사실들을 왜곡했기 때문에 비난을 받아야 마땅한 것입니다.

일부 영화 관객들은 영화 파고(Fargo, 1996 )에서 진실은 오직 미네소타 주 한가지 뿐이라는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참 세상에 이런 뻔뻔한 영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고 참 세상이 많이 변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 말은, 마치 우리가 이라크 전의 영웅이라고 칭송 받은 제리카 린치의 이야기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애국심을 위해서는 거짓말도 좋다고 믿는 것과 전혀 다를 바가 없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영화가 감독의 창작이며, 꼭 있는 그대로 만들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러한 영화는 대충, 오락 영화에나 해당하는 것이지, 이와 같은 다큐멘타리 영화에 해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워렌 비티의 Reds를 보고 존 리드의 인생에 대해서 어느정도 사실적으로 묘사했다고 믿지 못한다면, 도대체 무슨 감동을 받고, 그 영화가 뛰어난 영화라고 평가할 이유가 도대체 어디에 있겠습니까? JFK는 마치 감독이 보여주는 많은 이야기가 사실인 것 처럼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실을 바탕으로 음모론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실이라고 말하는 그 내용이 거짓말이라면, 그것은 관객과의 약속을 어기는 것입니다.

우선 올리버 스톤의 JFK의 영화의 장면 장면과 내용 하나 하나를 100가지로 나누어서 비평한 "올리버스톤의 JFK의 100가지 사실과 판단의 실수들(One Hundred Errors of Fact and Judgment in Oliver Stone's JFK)이라는 긴 이름의 사이트를 소개합니다. 이 사이트를 둘러보면 올리버 스톤의 JFK에 대한 많은 장면에 대한 문제점을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개리슨의 음모론의 이면..

영화속의 개리슨의 음모론을 정말로 사실과 다른 주장이 너무 많습니다. 개리슨이 대단한 사람으로 착각하시는 분이 많을 것 같아서 일부를 지적해 보겠습니다.

우선 페리라는 사람에 대한 것인데, 개리슨은 그가 무슨 대단한 일이라고 한 것이라고 착각하는데, 그것은 케네디 암살이 있은 이틀 후에 잭 마틴이라는 사람이 페리가 지난 2주 동안 달라스에 갔었고, 오스왈드에게 총쏘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고 말한 것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이것 때문에 개리슨은 페리를 조시하도록 시켰으나, 아무런 증거도 발견할 수 없었으며, 나중에 알려진 바에 의하면, 페리와 마틴은 서로 잘 아는 사이였으며, 그가 개리슨의 사무실에 전화를 걸 때 술취한 상태였고, 최근에 페리가 자신을 따돌린 것에 대한 복수심에서 일을 저질렀다고 고백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개리슨은 이것을 믿지 않았습니다. 페리가 죽자, 그는 이것도 역시 음모론으로 치부했습니다. 이와는 달리 페리의 죽음을 조사한 법의학자들은 죽음의 원인이 외부에서 유발될 성질이 아니기 때문에 자연사로 단정했습니다.

그 다음 개리슨의 음모론에 등장하는 또 다른 중요한 인물로 "크레이 쇼"가 있습니다. 그는 딘 앤드류라는 사람의 이야기에서 시작되는데, 앤드류는 크래이 버트란트라는 인물에 대해서 여러 가지 정보를 FBI에 제공했었습니다. 문제는 크레이 버트란트라는 인물에 대한 많은 정보가 전혀 확인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는 후에 크레이 버트란트와 오스왈드에 관련된 이야기가 허구였다고 자백했습니다. 그리고 딘 앤드류를 조사한 사람들은 그가 정직한 것과는 관련이 먼 사람이라는 것을 알 게 되었습니다. 앤드류가 이에 대한 내용은 후에 개리슨에게 말했고, 그 후에 그의 이야기가 꾸며낸 이야기라고 말했으나, 개리슨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후에 크레이 버트란트를 저명한 인사였던 "크레이 쇼"라고 폭탄 선언을 합니다. 사실상, 크레이 쇼를 배후 인물로 지목한 음모론자는 개리슨이 유일합니다.

또한 음모론을 조사하는 과정 중에 페리가 전직 FBI 요원이었던 가이 바니스터라는 인물을 알았다는 것을 알게되자 개리슨은 페리와 오스왈드를 바니스터와 '반쿠바 클랜'에 연결시키려고 노력했습니다. 이것을 연결시킬 만한 인물로는 데이빗 루이스가 적격이었으나, 데이빗 루이스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Al Beauboeuf라는 다른 인물을 뇌물로 매수하려고 시도했었으나 그가 그들의 대화가 녹음되었다는 것을 밝힌 이후 게리슨의 부하들이 이를 포기하게 됩니다.

루소라는 인물은 쇼를 법정에 세울 때 가장 중요한 증인이었습니다. 루소에 대해서 말이 많기는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개리슨이 조사할 때, 루소에게 최면을 걸어서 기억이 주입되거나 혹은 재구성되었다는 주장이 매우 설득력이 있습니다.

쇼를 법정에 세울 때, 게리슨에게, 도대체 무슨 동기로 쇼가 암살을 했을 것 같냐는 질문에 대해, 아마 아는 사람들은 기가 막힐 정말 놀라운 답변을 합니다. 개리슨은 오스왈드, 페리, 잭 루비, 쇼 모두가 동성애자였기 때문에 케네디를 암살했다는 말한 것입니다. 오스왈드는 이미 결혼해서 자식이 있었기 때문에 이를 지적하자, 개리슨은 오스왈드는 양성애자라고 주장했습니다. 개리슨은 동성애자들이 시기해서 자신들과 반대가 되는 이 세상에서 완벽한 사람의 모델인 케네디를 암살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개리슨은 수사가 진행되면서 자신의 주장에 대한 반대 증거가 나오면, 그 때마다. 여러 가지로 말을 바꾼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개리슨은 한가지 사실이 부정되면 새로운 음모론을 제기하면서 대중매체의 관심을 유지했습니다.

게리슨이 음모론을 이용해서 많은 물의를 일으켰지만, 가장 재미있는 것은 음모론에 필요한 저격수의 인원이 점차 늘어났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교과서 창고와 풀이 우거진 언덕에만 저격수가 있었다고 생각했으나, 후에는 제2의 오스왈드가 딜리 플라자에 있었다고 주장했고, CBS인터뷰에서는 4명의 암살자를 추가했다. 뉴욕 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는 마지막 총을 쏜 사람은 하수구 맨홀에 서있던 사람이라고 주장했으며, 그 후에는 저격할 때 주의를 산만하게 하기 위해서 간질환자등이 필요했다고 주장했고, 후에 다시 픽업 트럭에 2명의 저격수가 있었고, 쉽게 부서질 수 있는 총알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후에는 암살자들이 쉽게 부서지는 총알을 사용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개리슨은 딜리 플라자의 5곳에 암살자가 있다고 주장하여, 총 암살자의 수는 16명으로 늘어났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쇼가 재판을 통해서 결국 풀려났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의 인생은 개리슨으로 인하여 비참하게 됩니다. 개리슨은 아무런 직접적인 증거도 없이 쇼를 기소했으며, 결과적으로 2년간이나 잡혀 있어야 했습니다. 그리고는 무죄로 풀려났으나, 개리슨은 2년 뒤에 다시 그를 위증죄로 고발하게 되어 다시 2년간의 법정 투쟁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법정에서는 개리슨에게 다시는 쇼를 고발하지 못하게 하는 금지 명령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법정에서는 무죄로 풀려났을지 몰라도 그는 파산했습니다. 그는 4년간의 법정 투쟁에 그가 모아둔 20만불을 모두 써 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개리슨은 이 비용을 CIA가 지불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쇼는 수 백만불에 대한 손해 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개리슨을 대상으로 신청했으나 판결이 나기 전에 암으로 사망했습니다. 불행히도 법에 따르면, 소송이 진행되기 위해서는 부모나 자식이 살아있어야 했으나, 그는 자식이 없었고, 그의 어머니는 그가 사망하기 바로 전에 사망했기 때문에 소송은 계속 진행되지 못했습니다. 개리슨으로는 엄청난 행운이었죠.

사실 많은 음모론자들도 개리슨을 신뢰하지 않습니다. 많은 음모론자들은 올리버스톤이 개리슨의 주장을 근거로 영화를 만든다고 할 때 고개를 저었다고 합니다. 그의 일생을 살펴보면 그는 증거를 조작하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았으며, 증거를 말도 안되는 이유를 들이대서 억지로 끼워맞추래고 평생 노력한 사람이었습니다. 이쯤이면 편집증적 음모론자의 대열에 끼워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나마 그가 다행인 것은 죽기전에 그의 말을 믿어주는 멍청이를 만났고, 워너 브러더스는 그 멍청이에게 5천만불 짜리 영화를 만들도록 지원했다는 것입니다.

올리버 스톤의 엉터리 역사 영화인 JFK가 남긴 하나의 긍정적인 결과는 그 영화가 만들어진 후, 많은 사람들의 요청에 의해서 수 만건의 JFK 관련문서가 공개되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문서가 공개된 것 조차 알고 있지 못했을 것입니다. 당연한 일이죠. 문서중에 음모론의 입장을 지지하는 것은 없었기 때문이다. 거의 대부분의 문서가 공개되면 될수록 음모론은 설자리를 잃어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