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탄카멘왕의 저주 (파라오의 저주)


 

원래는 호기심천국 이전에 이 글을 완성하려고 했는데, 결국 시간에 쫓겨서 훨씬 늦어졌습니다.

호기심 천국을 본 사람은 이집트 사람들은 투탄카멘을 투탄카문으로 발음하는 것을 알 수 있었을 것입니다. 아직까지 이 왕의 정확한 이름을 어떻게 발음하는지를 제대로 모르는데 이 왕의 이름을 잠시 분석해 보면, Tout-Ankh-Amon (A는 그냥 A가 아니라 위에 ^가 포함된 글자임, 이집트에서는 모음을 사용하지 않았으마 A^가 겹쳐진 글자는 모음으로 취급되지 않았음)을 합쳐서 발음한 것입니다. Tout는 "상징"이라는 의미이고, Ankh는 "살아있는" 이라는 의미이고 아몬이 신의 이름입니다. 즉 "아몬의 살아있는 상징"이라는 의미이다. 신의 이름이 아몬 혹은 아문이라고 발음하기 때문이라서인지 몰라도 TV 프로그램에서 투탄카문이라고 말하기도 한 것같습니다.

어쨋거나 이 왕은 유명했던 왕은 아니지만 흥미있는 삶을 산 왕입니다. 우선 그의 앞선 왕이 그 유명한 이크나톤 왕이었습니다. 그는 이집트에서 매우 드믈게 유일신을 숭배했던 왕이며 그 신의 이름인 아톤왕의 이름을 따서 자신의 이름을 지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신은 다른 사람들에게 별로 흥미를 주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어쨋거나 그가 일찍 죽고 이크나톤의 본부인인 네페르티이티가 왕권을 잡았다가 다시 그녀가 죽자, 투탄카멘왕이 10세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라서 겨우 19세에 올라서 죽었습니다. 투탄카멘은 아크나톤과 그의 제2왕비사이에서 태어났었습니다. 그가 속한 왕조가 제 18왕조이고, 그뒤를 이어서 19왕조가 되어서는 그 유명한 람세스 2세를 비롯한 이집트의 황금기가 열리게 됩니다. 보통 모세와 람세스 2세를 연결하는 경우가 많은데 프로이트는 좀 획기적인 주장을 했었습니다. 즉 모세는 유대인이 아니라 이집트인이며 그의 유일신 사상은 유대인의 사상이 아니라 바로 아톤신의 사상에서 유래했다는 것입니다. 그는 그 증거의 하나로 신을 부를때 그 당시 아도나이 (주님이라는 의미)로 불렀는데 이것이 아톤신을 의미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주장을 확대해석하여 벨리코프스키가 여러가지 주장을 했지만 벨리코프스키의 주장은 거의 천재적인 추측으로 끝나버렸습니다. 최근의 람세스 2세라는 소설에서는 람세스와 모세를 같은 시기로 추정하지만 실제로 같은 시기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여집니다. 역사적인 이야기야 역사가들에게 맡기고 우리는 파라오의 저주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투탄카멘왕의 무덤이 발견되게 된 것은 1922년 10월 26일 영국의 카나본 경과 고고학자인 카터에 의한 것으로 "왕가의 계곡"에서 거의 완벽한 상태로 발견되었습니다. 왕가의 계곡은 피라미드를 더이상 만들지 못하게 되자 계곡에 파라오의 무덤을 만들게 된 것으로 기원전 2천년에서 1천사이의 이집트의 파라오의 무덤이 있는 곳이었습니다. 이것이 1881년 발견되었으며 이 발굴에 얽힌 이야기도 매우 재미있습니다.

카터는 고고학발굴에 전문가였으면 카나본 경은 금전적인 지원을 하고 있었습니다. 카터경과 카나본 경이 서로 연결되어 발굴을 시작한 후 여러 왕자의 무덤을 비롯하여 발굴은 많이 하였지만 대부분이 이미 도굴당한 상태여서 별로 실속은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그는 투탄카멘의 왕의 무덤만이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무덤을 발견하려고 발굴을 계속하였다. 그러나 이게 별로 진척이 없었고 곧바도 1차세계대전이 일어났서 중단했다가 1918년에 다시 발굴을 시작했다. 이때부터 4년간을 발굴했지만 아무런 성과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카나본 경은 더 이상 발굴을 지원하지 않겠다고 자금 지원을 중단하려고 하였습니다. 이때 한번 더 기회를 달라고 간청한 카터는 11월 1일에 람세스 4세의 무덤에서 남쪽 방향을 도랑을 팠으며 11월 4일 계단이 발견되었고, 그날 저녁에는 벌써 아래로 내려가는 14개의 계단과 그 앞에 돌뚜껑이 나타났다. 카터는 카르나본 경에서 전보를 쳤고 카르나본 경이 2주뒤에 오자 돌뚜껑을 지나서 새로운 돌뚜껑이 나오자 돌뚜껑에 구멍을 뚫고 안을 들여다 보았다. 그 안에서 채리어트 (전차), 실제 크기와 똑 같은 신상, 온통 금박을 입힌 소파와 금을 박아 넣은 왕좌를 보았다. 아직 미라는 보지 못했다. 하지만 제단과 미라를 만들면서 장기를 보관하는 카노픽 항아리등까지 보였다. 이때 그 자리에서 상형문자의 점토판을 보게 되었다. 그 점토판에는 "죽음은 그 날개로 파라오의 평안을 교란시키는 자를 모두 죽이리라"라고 쓰여 있었다. 카터는 이 점토판의 내용을 옮겨적고 그 점토판을 숨긴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날이새면 작업자들이 들어오고 이것을 알게 되면 동요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구절이 정확하게 어디에 쓰여있었는지는 약간 혼동스러운데 어떤 이는 이것이 파라오의 관에 일반적으로 쓰여진 "왕의 영원한 안식을 방해하는 자에게 벌이 내릴 것이다"라는 저주의 글일 뿐이라고 말합니다.

발굴에 참여한 카나본경은 다음해 4월에 마치 말라리아 모기에 물린 후의 증세로 죽어버립니다. 그리고 그 당시 이집트의 카이로시가 정전이 되었습니다. 이것을 보통 신의 저주라고 말하곤 합니다. 보통은 여기에 한가지 덧붙여서 영국의 그의 집에 있는 개가 짖다고 죽어버렸다고 합니다. 이런 이야기가 파라오의 저주로 각색되어 번지게된 것은 카나번 경의 잘못이 매우 큽니다. 우선 그는 기사의 독점권을 영국의 "타임즈"에 팔아버렸습니다. 그당시 이 발굴은 매우 중요한 사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언론은 그 기사를 타임즈를 통해서 얻어야 했다는 것에 매우 불만이 컸습니다. 그러므로 다른 신문사들은 직접 조사를 해야만 했습니다. 이때에 카나본경이 죽자 이 내용을 부풀려서 기사화 한 것이었습니다. 죽은 사람은 이 뿐이 아닙니다. 아서 메이스라는 미국 고고학자가 카너번이 사망한 직후에 다시 사망합니다. 미국의 유명한 민간 금융업자의 아들인 조지 J. 굴드도 무덤으로 안내된 다음에 다시 이튿날 고열로 눕고 그날로 죽었습니다.

조엘 울이라는 영국의 실업가도 무덤을 견학하고 귀국하던 도중에 고열로 죽었습니다. 투탄카멘의 미이라의 시체를 X선 촬영한 사진기사 아치볼드 더글라스 라이드도 1924년 영국으로 돌아가서 사망했습니다. 전체적으로 이후에도 관련자가 많이 죽었습니다.

"파라오의 저주"를 책으로 낸 필립 반덴버그는 투탄카멘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거나 연관이 없이 죽은 사람을 모두 정리해 두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많은 경우에 심신이 소모적인 상황이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카터 자신도 우울증의 발작과 심신 소모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저자는 고대 이집트의 승려가 효과를 수천년이나 지속할 수 있는 유독물질이나 세균류를 알고 있지 않았나 추측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죽기는 했지만 정말로 파라오의 저주이란 증거는 사실상 거의 없습니다. 죽은 사람의 대부분이 나이가 들어서 죽은 경우와 우연을 제외하고 나면 별 신기한 것도 없으며, 발굴에 관련되어 있는 약 1500명 이상의 사람중에서 20명 남짓 죽은 것은 그다지 대단한 일이라고도 볼 수 없을 것입니다. 카나본 경이 죽을때 전기가 나갔다고 하지만 그당시 전기 사정이 매우 안좋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문의조차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일부 사람들이 곰팡이에 의해서 죽었을 가능성도 말하고 있고 특히 호기심천국에서는 일부곰팡이류의 아플라톡신을 말하고는 있지만 글쎄요, 가능성이 거의 없는 이야기입니다. 곰팡이에 감염되고 도대체 바로 죽지도 않고 한참 뒤에 죽은 것은 무엇으로 설명하겠습니까? 이집트 사람들이 천연의 독을 매우 잘썼기 때문에 그 독성으로 서서히 죽어갔다고 하는 사람도 있기는 있는데 그 역시 믿을 수 없는 일입니다. 대개의 경우 독성이 천천히 나타나는 것이라고 해도 1주일 안에는 무슨 징조가 보여야 하겠죠.

아마도 많은 사람들은 파라오의 저주때문에 죽은 것이 아니라 그냥 보통의 평범한 죽음을 맞이하였을 것입니다. 다만 파라오의 저주를 믿는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어떤 저주를 받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다가 정신적으로 매우 힘들어하다가 결국 병이 걸려서 죽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투탄카멘왕의 저주에 대한 것이 사실인지 아닌지 알기 위해서 연구한 결과가 있습니다. 그 당시 관련된 사람들을 모두 조사한 것이죠.

아래는 그 표입니다.

 

이름

사망연도

사망시 나이

무덤이 열린후 죽기까지 기간

역활

비고

Adamson, Sergent Richard

1980+

-

57+

무덤을 7년간 지킴

투탄카멘의 유물과 가장 가까운 사람

Beedite, Georges

1926

69

3

Louvre representative

심장마비로 사망

Breasted, Professor J.H.

1935

70

12

고고학자, 시카고대학

 

Bruyere, Bernard

1965+

80+

42+

고고학자

 

Burton, Harry

1939+

-

16+

공식사진사

거의 모든 일에 직접 관여

Capart, Jean

1947

70

24

벨기에인 고고학자

 

Carnavon, Lord

1923

57

4개월

발굴단 후원자

발굴시 문을 열 때 있던 3인중 한 사람임. 그러나 그는 미라를 벗겨내기전에 사망

Carter, Howard

1939

66

16

작업 책임자

문을 열 때 있던 사람, 모든 일에 관여했던 발굴 책임자

Derry, Dr. Douglas

1939

80+

16

카이로 대학의 해부학자

미라를 짤라내서 조사함

Engelbach, Reginald

1946

58

23

카이로 박물관 대표

 

Gardiner,Sir Alan

1965+

80+

42+

문헌학자

글이 쓰여진 모든 물건을 다룸

Hall, Lindsley F.

1939+

-

16+

Project draftsman

무덤의 모든 작업에 참여함

Hauser, Walter

1939+

-

16+

"

"

Herbert, Lady Evelyn

1980

78

57

카나본의 딸

무덤을 열 때 있던 3인중의 한사람

Kuentz, Charles

1939+

-

16+

 

 

Lacau, Pierre

1965

92

42

르블의 이집트학자

직접적으로 모든 작업에 관여함

Lefebvre, Gustave

1957

78

34

카이로 박물관

 

Lucas, Alfred

1950+

79

27+

이집트 정부의 화학자

미이라의 조직과 먼지, 식품등의 분석을 실시

Lythgoe, A.M.

1934

66

11

뉴욕시의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Mace, Arthur C.

1928

-

5

뉴욕시의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Winlock, Herbert E.

1950

66

27

뉴욕시의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표에서 + 표시는 그 이상을 의미하고 (-) 표시는 알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상의 표에서 보는 바와 같이 관련자들의 평균수명은 73세 이상이 되며 이 나이는 일반적인 평균수명보다 많은 것입니다. 또한 무덤을 발굴하고 죽기까지 평균적으로 23년 이상이 걸렸습니다. 특히 주목해야 할 사람은 바로 Adamson, Carter, Burton, Derry, Lucas로 이들은 실제로 무덤을 열거나 유물들을 옮기고 다루었던 사람들로서 이들은 미라와 관련이 있을 후 평균적으로 26년뒤에 사망합니다. (여기 표에는 그당시 작업을 했던 수백명의 노동자들은 다루고 있지 않습니다.)

이상으로 본 바와 같이 파라오의 저주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책에서는 파라오의 저주가 어느정도는 신빙성이 있는 것처럼 주장하기도 하며, 일부의 책에서는 관련된 몇사람은 분명히 의문의 죽음을 당한 것으로 말하고 있으나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호기심천국에서 주장한 바와 같은 곰팡이설같은 것은 사실에 근거를 둔 이론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