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로힘과 엘, 그리고 야웨

들어가기 전에 : 이 글은 일반적인 교회의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서 쓴 것이 아니라 근본주의 창조론자들의 주장에 대한 반론의 글이다. 그들은 성경이 4개의 전승층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주장을 하지 않고 오직 한개의 사료층이고 더 심한 경우는 성경의 앞부분의 5권을 모세가 저술했다고 믿고 있다. 난 성경의 사료층이 4개(혹은 이의 변형)로 이루어졌다는 사람들과 토론할 생각이 없다. 왜냐하면 일단 그렇게 인정하면, 더 이상 창조론과 진화론 논쟁은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참고로 사료가 4개의 층으로 이루어졌다는 주장은 개신교의 벨하우젠의 유명한 주장이며, 가톨릭도 역시 비슷한 주장을 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기독교 전반에에서 이러한 주장이 나오는 것이지 결코 본인의 단독의 주장이 아닌 것이다.

 

언젠가 엘로힘이 복수형이라고 했더니 강건일씨는 그것은 문자적으로만 복수형이지 단수형이라고 봐야한다고 쓴 글이 있었다. 재미있는 내용이다. 그 사람은 뭘 찾아봤는지 궁금하다. 유일신교를 믿는 사람들이 한 말 혹은 글에서는 유일신에 대한 글말고 뭐가 나올수 있다는 것인가? 그것은 과연 적절한 질문이었는가? 아니면 상대를 이기기 위한 wishful thinking인가? 한번 자기 자신을 짚어보길 바란다.

일반적으로 엘로힘이라고 쓰여져있는 이유는 사실 매우 어려운 문제라고 보인다. 기독교 목사들과 유대인들은 전혀 다른 해석을 하고 있다. 기독교 목사들의 일부는 그것이 삼위일체의 표현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유대인들은 그것이 장엄복수라고 주장한다. 장엄복수라는 주장은 사실 널리 퍼져있어서 목사들도 주장하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엘로힘이라는 단어는 좀 까다로운 단어이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이나 기독교 일부목사들의 생각과는 달리, 엘로힘은 원래 하느님을 가르키는 단어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느님은 자기의 이름은 야웨라고 말했지 다른 그 어떤 말도 그 이름으로 가지지 않았다. 그러므로 야웨라는 단어만이 하느님의 고유명사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왜 야웨에는 장엄복수가 없는가? 이 말은 곧 엘로힘이란 단어를 장엄 복수로 해석 한 것이 바로 신학자들이 유일신사상을 지키기 위한 생각에 지나지 않다는 것을 알게 한다. 정말로 장엄해야 할 신의 이름은 엘로힘이 아니라 야웨이기 때문이다.

장엄복수라는 주장을 살펴보자, 위의 26절에는 엘로힘은 장엄복수로 쓰이고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바로 아래 27절에는 그냥 단수로 쓰고 있다. 바로 연이어서 쓰는데 과연 어느쪽에 장엄복수가 들어가야 하는가? 보통은 내가 나 자신을 이야기할 때 굳이 나자신을 존칭으로 표현하지 않지만 3자의 시각에서 즉 피조물의 시각에서 오히려 존칭을 써야하지 않을까?

여기서 우리라고 하는 표현을 매우 주목해야 한다. 우리라고 표현하면서 이것이 복수가 아니라 의미로 단수라고 하는 것이 과연 합리적인 해석이라고 볼 수 있는가?

한번 다른 구절을 살펴보자.

"One of Us 우리들 중 한 (신)이 될 것이다." 라는 표현은 장엄복수라는 개념에 큰 손상을 가할 것으로 보인다. 즉 복수형의 의미가 정말로 복수의 신을 의미한다는 것이 명확하기 때문이다. 즉 단순히 동사만 복수형으로 받은 것이 아니라 의미가 완전히 복수형임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유일신 사상이 있을 때는 성서저자는 단수형(El)을 쓴다. 사실 야웨는 하나의 신이므로 자신을 표현할 때 단수형을 많이 사용했다.

이것은 다시 풀어서 다음과 같다.

 

이것도 좀더 자세히 쓰면,

 

야웨를 El로 표현한 것은 이외에도 많다. (Genesis 35:1,3; 43:14; 46:3; 48:3; 49:25; Exodus 15:2; 20:5; 34:6) 이것은 성경의 저자가 아직도 유일신교와 다신교 사이에서 왔다갔다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문제가 되는 것은 엘로힘이 야웨를 가르키는 경우와 복수형으로 쓰이는 경우에 문법적으로도 혼재된 특징을 보인다. 야웨를 의미할때는 정관사 (ha)를 빼고 주어로 쓰인 경우에는 동사를 단수로 받았다. 그리고 정관사를 넣으면 신들이라는 의미가 되서 동사도 복수로 받았다. 대표적인 것이 아마도 십계명의 제2계명일 것이다. 십계명중 2번째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아래의 글을 읽어보길 바란다. KJV이다.

 

 

하지만 이것은 KJV의 이야기고 원문 대로 번역하면 의미가 약간 달라진다.

즉 자기 자신을 엘로힘으로 표현하고 복수형으로 받았다. 참고로 niglu에서 u 는 영어의 s 처럼 복수형을 의미한다.

이러한 영어판 번역은 KJV 버전이 교리에 맞추기 위해서 문법적으로 수정했기 때문이다. 원문과 차이가 나는 번역은 이것 말고도 여럿이 있다고 한다.

아래의 문장들에서는 두가지를 나타낸다. 신은 야웨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엘로힘은 야웨만을 가르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엘로힘은 엘의 복수형이라는 점이고 결코 장엄복수로 썼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점이다. 특히 엘로힘은 십계명의 2계명에서는 야웨를 가르치는 것도 아니고, 다른 신들을 가르치는 것이다. 다른 신을 가르치면서 엘로힘이라고 사용한 것에 대해서는 엘로힘이 장엄복수라는 것에 대해서 믿을 수 없는 주장임을 알게 된다. 이러한 사례는 흔하다.

아래는 출애굽 과정에서 하는 말이다.

 

시편에는 이런 말이 있다.

 

이러한 글들을 통해서 우리는 더 이상 엘로힘이 장엄복수라는 말도 믿을 수 없고, 또한 의미는 단수지만 문법적으로만 복수형을 취한다는 것도 사실 믿기 어렵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문법적으로 복수이지만 단수를 취하는 경우는 영어의 경우에 흔히 나타나지만 그 경우 근본적인 의미는 집합명사일 때이다. 집합명사라는 것은 집합을 이루는 여러개의 집합을 단수로 받는 것이므로 본질적으로 그 구성원이 여러개라는 의미이다.

왜 이런 혼동이 오는가? 그것은 사실 어려운 이야기이겠지만 skeptics의 입장에서(그리고 사실 고등비평을 하는 신학자들도 동의하겠지만 신학자에 대해서는 일단 제외시키자)는 매우 간단한 것이다.

사실 엘은 가나안의 신의 이름이다. 엘은 신들중의 신의 이름이며 그 이름으로 이미 장엄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특히 우가리타 문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엘의 이름을 이해하여야 할 것이다.

우가리트 문헌에서 몇마디 인용해 본다.

신들의 자식들의 엘이여
엘의 자식들의 모임에
엘의 자식들의 회중에..
엘과 아쉐라여
엘은 자비로우며
엘은 확고하며
엘은 평화입닏.
엘이여 서두르십시오
엘이여 우리를 구원하십시오
짜폰산을 위해, 우가리트를 위해
엘은 훌륭합니다.
 

이런 가나안의 엘은 아브람의 부족들이 가나안땅에 이주하면서 융화되기 시작하고 결정적으로 야콥의 씨름사건을 계기로 유대인과 융화되게 된다. 이 과정은 야곱의 신 (야웨)와 가나안의 신 (엘)이 겨루었고 거의 완전히 동화되게 된 것이다. 이후에 엘이라는 이름은 인명에 무척이나 많이 쓰이게 된다. 예를들어 엘리야의 엘야후이며 이것은 엘은 야웨이다라는 음역할 수 있다. (야는 야웨의 축약형이다.) 엘은 처음에는 고유명사였지만 야웨라는 단어가 있으므로 보통명사화하게 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엘은 초기만 해도 일반적인 신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엘이라는 신을 가르쳤다는 것이다. 벧엘이니, 이스라엘이니 하는 것은 모두 엘을 의미하는 것이지 야웨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특히 야웨라는 이름 대신 엘로힘을 사용한 엘로히스트들은 신학자들이라는 것이 일반적이다. 성경에 엘로힘이라는 단어가 들어가게 된 것은 엘로히스트들이 신이 자기의 이름을 알려주기 전에 야웨라고 쓰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생각해서, 신이 자기 자신의 이름을 밝히기 전에는 엘로힘이나 엘이라고 불렸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엘로힘이나 엘은 따지고 보면 가나안의 신의 이름이며, 설사 그렇게 동화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야웨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문제는 가나안에서는 엘을 믿었지만 여러신들의 다신교 사상이었다. 다신교 사상이었으므로 여러 엘이 나타날 수 있고, 엘을 믿는 사람들은 다신교에서 유일신교로 변화하고 있었으므로 그들은 엘로힘을 사용할때는 복수를 사용하기도 하고, 막연한 신들이라는 단어로 바뀌기도 하고, 어떤 경우에는 야웨를 의미하기도 한다. 즉 엘리야는 엘은 야웨라는 의미의 이름이고, 앞서 지적했듯 벧엘의 엘은 야웨를 의미한다고 믿었다.

 

이제 마지막으로 야웨는 엘의 전통을 가진 가나안신들의 전통을 이어받았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다신교의 성격을 띠는 경향이 있다. 이것에 대한 사례는 생각외로 많다. 즉 솔로만까지도 야웨는 신들중에서 가장 으뜸이 되는 신이지 유일한 신은 아니다. (Solomon said, "Great is our God above all gods" (2 Chron. 2:5). )

성경은 유일신을 기초로 한다고 말한다. 유일신과 다신교는 좀 쉽게 생각하면 쉬운 것 같지만 사람들은 다신교를 쉽게 유일신교로 착각하는 경향이 있다. 신들중의 신을 섬기는 것은 그 신만을 섬긴다고 해도 다신교이지 유일신교가 아니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신들중의 신이라는 표현은 생각외로 많이 발견된다. 물론 성경에는 오직 야웨만이 신이라는 구절도 분명히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의 저자들이 유일신 사상과 다신교 사상을 왔다갔다 하면서 썼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사실 유대인의 역사가 다신교의 전통속에 살던 사람들 사이에서 유일신교로 발전해나갔음을 이해하면 뭐 이해될만도 하지 않은가?

이러한 다신교의 관습은 이사야서에서는 완전히 사라져 버린다. 하지만 이것은 바빌론 유배기라는 오랜 시간이 지나고이다. 특히 "제 2의 이사야서"라고도 불리는 이사야 40-55장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사야서는 한명의 이사야가 아닌 2명의 이사야가 쓴 것으로 최근에 인정받고 있다.)

 

네 앞에 엘이 만들어지지 않았으며
내 뒤에도 있을 수 없다. (43:10-11)
 
내가 처음이요, 내가 마지막이다.
나 이외에는 신들이 없다. (44:6)
 
내가 야웨가 아니더냐?
나 이외에는 더 신들이 없다.
정의와 구원의 엘(신)
나를 제외하면 없다. (45:21)

 

이러한 사상이 물론 쉽게 나온 것은 아니다.

신명기의 6장 4절의

 

라고 명백히 한다.

 

이런 구절은 사실 후대에 나타나며, 초기에는 이렇게 명확한 구절은 없다. 이말은 다시 말해서, 이제 다신교와 유일신교의 체험속에서 유일신교로 완전히 바뀌었음을 의미한다.

마지막으로 강건일씨는 심심하다면 talkorigins 정도는 읽어보길 바란다. 나야 성경을 공부했으니 문제가 없지만 자료를 찾던 중에 talkorigins에도 같은 내용의 글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물론 덜 자세하게 쓰여졌지만, 남을 비난하기전에 도대체 다른 sketpics 들은 뭐라고 하는지 한번 살펴보는 습관도 배우는 것이 좋을 듯하다.

 

 

(야훼를 야웨로 쓴 것은 그게 더 정확한 발음이라고 해서 쓴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