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성주의와 쿤 그리고 몇가지 과학교육에 대한 관점에 대해서.

 

동호회의 운영방안에 대한 시삽의 생각.

 

오컬트가 세상에 난무하는 시기에 오컬트가 널리 퍼지게 된 이유를 알아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다음으로 미루고 왜 오컬트와 과학교육과의 관계만을 알아보고자 한다.

개인적으로 본다면 오컬트가 널리 퍼지게 된 것이 단지 오컬트만의 문제는 아니고 과학교육과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상하게도 미국에서 과학이 발전하기 시작하는 단계인 1960년대에 오히려 오컬트 역시 번성하기 시작한다. 우연의 일치일수도 있지만 과학교육이 강조되는 시점에서 오컬트의 번성은 의아하게 보인다.

오컬트의 성공은 오컬트의 내부에서 찾아야 하지만 과학교육의 입장에서는 과학교육이 오컬트가 성공하지 못하게 하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반성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 그럴까?

본인은 그것이 과학교육의 방법론에 있다고 본다.

우선 과학교육은 몇가지 방법이 있는데 오래된 교육일수록 암기식이고, 강압적인 방법을 사용한다. 이러한 방법은 소수의 천재를 키워내는데는 성공적일지 몰라도 전반적으로 낙후된 방법임에는 분명하다. 그 다음에 나타난 교육사조는 생활중심의 교육사조이다. 죤두이의 교육사상에 근거해서 만들어진 특히 초등학교를 중심으로 생활중심의 교육사조로 교과서보다는 생활을, 지식보다는 행동을, 분과보다는 종합을, 미래의 준비보다는 현재 생활을, 교사의 교수보다는 학습자의 활동을 중요시 한 사조이다. 이러한 사조는 과학발전에 크게 도움이 되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미국이 소련보다 과학에 뒤지는데 영향을 주게 된다. 이러한 교육의 문제점을 개선하면서 나타난 방법론이 학문위주의 교육이다. 학문위주의 교육사조는 지식의 구조를 핵심으로 교과내용에 조직하여 나선형 교육과정을 원칙으로 하며, 탐구과정을 중시하여 전이가를 높이려는 특징이 있었다. 이러한 교육과정에서는 학문의내용과 탐구과정이 교육의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결정 요인이 된다. 이러한 교육은 일방적인 주입식도 아니고, 그 학생이 이해될 수 있는 형태로 번역되어야만 한다.

그 유명한 미국의 1960년대의 과학교육 개혁은 학문중심의 교육사조를 기초로 하고 있다. 이 방법론은 성공을 거두었지만 최근에는 거의 사라져가고 있다. 그 이유는 이 교육방식이 생각보다 덜 효과적이라는 근거 때문이다. 최근에는 이것보다는 인간 중심의 교육사조와 STS 교육사조가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 과정은 지식의 구조를 가르치기 보다는 지식이 성립되는 과정을 능동적으로 학습하도록 되어있다. 사실 미국의 과학교육의 황금기는 1970년대까지 이다. 왜 이런 발전이 멈추었는가? 그것은 막대한 예산을 퍼부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과학교육 결과가 예상과는 달리 부실했기 때문이다. 학문중심 철학에 입각하면 학문중심 과학교육 개혁운동의 결과는 분명히 기본 개념의 이해로 나타났어야 하고 학생들의 탐구능력의 향상이 있어야 할 것이지만 오히려 그 당시 사람들은 과학발전이 공해문제 베트남 전쟁, 핵문제, 환경파괴문제등으로 인하여 학문중심의 과학에 대해서 회의가 일어났다. 그 후에 일어난 사조는 인간중심의 과학교육이었으며 그것은 모든 사람을 위한 과학이라는 개념으로 상징된다. 이 교육 이론은 1970년대 이후에 널리 퍼졌고 현재 우리나라 과학교육과정을 지지하는 기본적인 이론이다.

지금까지 장황하게 말했지만 사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학문위주의 과학을 강조하는 교육은 일반 대중에게 거의 가치가 없다는 점이다. 이것은 우리 동호회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본인이 항상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들중의 하나가 우리 동호회에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지고 있지만 실제로 글을 쓰는 사람은 없다는 점과, 또한 가지, 그 내용을 다 알고 있는 사람도 별로 없다는 점, 그리고 가장 큰 문제는 웬만큼 알아도 자신감을 가지지 못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개념의 변화를 주도하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한 과학사가는 아무리 생각해도 쿤을 빼 놓을 수가 없다. 쿤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논의를 했으므로 더 이상 할 필요성은 없다고 보고, 다만 몇가지 짚어보면, 과학에 있어서 쿤이 한 일은 과학을 과학자가 하는 것이 아니라 과학자가 하는 일이 과학이라는 개념을 심어준 과학사가라고 평가하고 싶다. 비록 그의 파라다임에 대해서는 최근의 과학사적인 의미론 별로 사용되지 않지만 그 내용은 발전적으로 폐기되었지 사장되어 버리진 않았다.

쿤의 주장을 통해서 가장 정확하게 알게 된 것은 과학을 잘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방식이 필요한가라는 점이었는데 그 전까지만 해도 합리적 사고를 중요시하게 되었으나 그 후엔 오히려 철저한 훈련을 강조하게 된다. 다시 말해서, 새로운 아이디어는 천재가 어느날 갑자기 영감이 떠올라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철저한 훈련으로 파라다임이 몸에 밴 사람이 가장 잘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과학교육은 철저하게 교과서 중심이어야 한다고 아마 생각하게 될 것이다. 이런 의미로 본다면 쿤의 교육방식은 아마도 학문위주의 사조와 밀접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쿤은 파라다임이 어떻게 형성되는가를 논의했기 때문에 우리가 어떻게 사례를 통해서 과학적인 파라다임을 받아들이는지를 깨닫게 했다. 과학교육은 이제 그를 통해서 선입개념의 중요성과 오개념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다시 말해서 학생들의 학습과정에 대해서 학문위주의 교육사조라면 "가르쳐야할 내용을 소상하게 학생들에게 설명해 주는 식으로 수업을 전개하는 교사는 일반적으로 자세하게만 설명해준다면 학생들은 학습 내용을 무리없이 이해할 수 있으며, 만약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면 그것은 선생님의 설명의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가정한다." 하지만 교육과정에 대한 연구를 통해서 이러한 가정은 잘못된 것임이 밝혀졌다. 왜냐하면 학생들은 이미 선입된 개념인 선입개념으로 모델을 만들어가면서 이해를 시도하기 때문이다. 그 시도가 처음에 맞아 보인다면 학생은 그 모델을 고집하게 되고 오개념을 가지게 된다.

이러한 구성주의의 시초에 쿤이 있다는 것을 부정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 같다. 쿤은 바로 파라다임이 어떤 것인지, 그리고 그 속에서 과학이 뭔지, 모델이 뭔지를 아주 선명하게 다루었었기 때문이다.

구성주의에 의하면 학생들에게 가르친다는 것은 백지에 뭔가 그림을 그리듯이 새로운 개념을 넣어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머리속에 이미 형성되어 있는 선입개념을 변화시키거나 더욱 발전시키는 형태로 학습이 이루어진다고 보는 것이다.

본인은 우리 동호회의 많은 글들을 가장 우선적으로 만들었으며 최소한으로 과학철학에 대한 글을 올렸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역시 쿤의 영향이라고 볼 수 있는데 아무리 과학철학을 말해봤자, 이미 기존의 선행개념을 수정시킬수 없기 때문이다. 쿤이 분명히 말하는 대로 파라다임은 사례가 없으면 바뀌지 않는 것이다. 우리가 해야할 것은 새로운 그리고 분명한 사례를 제시하여 사이비과학이 왜 사이비인지를 많은 사례를 통해서 알리고 그것을 통해서 글을 읽는 사람들이 인지 갈등을 통하여 새로운 파라다임을 형성하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동호회에서 해야할 일은 될 수 있으면 많은 사례들을 모으는 것이다.

이점에 있어서 나와 반대의 생각을 한 사람은 분명히 강건일씨일 것이다. 그 사람은 자신의 홈페이지에도 나왔듯이 계몽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하지만 본 동호회에는 계몽이라는 단어는 하나도 쓰지 않았다. 그것은 몇가지 이유가 있다. 본인은 일반인들이 오컬트를 받아들이는 것도 그 나름대로의 합리적인 판단에 근거했다고 믿기 때문이다. 다만 그들에게는 우리처럼 선명한 사례가 없었기 때문에 증언이나 일화에 의존하는 주장이 매우 근거있게 들렸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이러한 것은 계몽이라던가 혹은 그 사람의 무지가 원인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우리나라 자체의 문화가 문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지적 능력이 우리보다 못하지 않기 때문에 나는 계몽이라는 단어를 적합하지 않다고 보는 것이다.

두 번째로 우리의 과학교육과정은 과학은 어렵고 학문적이고 과학자들이나 하는 것으로 만들었다. 비록 최근의 교육과정은 바뀌고 있지만 그것은 이론상의 문제이고 앞으로 그렇게 하겠다는 것이지 현재 대학입시가 교육을 외곡시키는 현실에서는 아직도 학문위주 교육사조 혹은 그 이하의 형식주의 교육사조의 전통이 뿌리깊다. 이러한 것은 모두 과학교육이 잘못된 것이기 때문에 나는 일반인들을 절대 어리석은 사람으로 보고싶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해야할 일은 이제 구성주의 교육과정에 근거한 사례 중심의 운영을 하고자 한다. 특히 오개념을 수정하기 위해서는 오직 훌륭한 사례만이 가치가 있다는 것을 항상 운영에 참고하려고 한다.

 

P.S.

이 글은 강건일 씨가 마치 내가 구성주의나 과학교육 그리고 토마스 쿤에 대해서 무식하면서 아는 체한다고 쓴 글에 대한 답 글이 될 수도 있음을 밝힌다.

 

P.S.

이글에 대한 강건일씨의 반론이 그의 홈페이지에 있다. 하지만 그 내용은 과학교육론의 기본입장도 이해하지 못하고 학문위주의 교육사조가 문제라고 하니까, 마치 본인이 학문을 무시하는 것으로 자기 맘대로 억측하고 글을 쓰는 유아적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 안타까움을 느낀다. 교사라면 왜 과학교육이 학문위주의 교육사조에서 인본주의 교육사조로 바뀌게 되는지 이해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우리나라의 과학교육은 학문위주의 교육사조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강건일씨는 자신이 모르는 것을 자기 맘대로 해석하고 정의를 내리고, 비판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는데, 그런 태도는 pseudo skpeiticism 라고 불리는 것이다.